영화 '원더' 상처와 주름, 그 아름다운 지도에 관하여
영화 '원더' 상처와 주름, 그 아름다운 지도에 관하여
  • 이현 영화해설가
  • 승인 2018.01.26 0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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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감미료가 가미되지 않은 드문 영화 '원더'의 재발견

[휴먼에이드] 세상의 모든 '착한 영화'가 취하는 가장 대중적인 구성은 코메디이거나 신파일 것이다. 과장된 설정으로 관객에게 부담을 줄 수도 있고, 엄마나 아이가 불치병이나 사고로 죽는다든가, 자식을 위해 부모가 희생을 하던가 하는 '자동 눈물버튼'을 개연성도 없이 마구 누르는 반칙을 범할 수도 있다.

이러한 공식들에 화답할 것인지 아닌지는 한 명 한 명 관객의 몫이겠으나, 감동을 상품으로 하는 상업영화 중에서 어느 정도 MSG(인공감미료)를 치지 않은 조리법의 영화란 드물다는 면에서 이 영화의 '원더'를 재발견한다. 

영화 '원더'의 포스터. = 네이버 블로그
영화 '원더'의 포스터. = 네이버 블로그

 

아이스크림 가게를 가고, 자전거를 타고, 친구와 게임을 하는 것. 또래의 여느 아이들에겐 평범한 일상이지만 영화속 주인공 '어기'(어거스트)에게는 꿈 같은 소망이다.

안면기형증을 가지고 태어난 어기는 출생 후 27번의 혹독한 수술을 받아왔지만 평범하고 정상적인 얼굴을 가질 수는 없었다. 비뚤어진 눈, 코, 입과 수술자국으로 수 놓아진 얼굴을 가지게 된 어기를 위해 엄마 '이사벨'은 논문을 포기하고 집에서 직접 아들을 가르쳐 왔다.

평생 아들을 숨기고 살 수만은 없어서 '순한 양을 도살장으로 보내는 심정으로' 어기를 5학년으로 입학시키기로 하면서 영화는 어기, 어기의 누나, 어기의 친구 등 각 인물의 시선으로 초점을 옮겨가며 기괴한 병을 가진 어기와 마찬가지로 누구나 자신만의 아픔을 자기만의 방식대로 감당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넌지시 드러내 보인다.

집에서도 '우주인 헬멧'을 쓸 정도로 과학을 좋아하는 어기에게 과학수업이 기대되긴 하지만, 학교와 아이들의 선입견은 어기에게 너무 가혹한 선택일 수 있다는 것을 어기와 엄마 이사벨, 아빠 네이트, 누나 비아(올리비아)는 알고 있다. 만약 모든 일이 어긋난다면, 아무도 어기의 친구가 되어주지 않는다면, 어기는 영원히 '우주인 헬멧' 안으로 꼭꼭 숨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영화 '원더'의 스틸컷 = 네이버 블로그
영화 '원더'의 스틸컷 = 네이버 블로그

 

어기가 고개를 떨구고 아이들의 신발을 쳐다볼 때, 아이들이 어기에게 '천진난폭'한 말을 건넬 때만 마음이 아픈 것은 아니다. 어기가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모두가 동생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가운데 숙제도 혼자서 하고, 공부도 병원 대기실에서 혼자 해야 했던 어기의 누나도 있다. 쓸쓸한 느낌이 들 때마다 자신을 가장 좋아해 줬던 돌아가신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어기의 누나 '비아'도 자신만의 헬멧 속에 가끔 숨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늘 어기에게 고정된 채, 한 번도 비아를 바라봐 주지 않는 엄마의 시선을 관객은 안타깝게 따라가보게 된다.

학교 정문 앞에서 아이들이 어기에게 친절하게 대해주기를 기도하는 엄마의 바람에 힘을 보태고 응원을 보내지만, 어기의 하루가 어땠는 지 엄마가 궁금해 할 때 누나 비아의 슬픈 표정 또한 관객의 시야에 들어오게 만드는 데서 이 영화의 '다초점 렌즈' 같은 독특한 온기가 객석으로 스민다.

영화 '원더'의 스틸컷 = 네이버 블로그
영화 '원더'의 스틸컷 = 네이버 블로그

 

하교시간에 맞춰 어기를 데리러 온 엄마가 오랫동안 바라 온 일이 일어나는 걸 보며 겨우 울음을 참을 때, 우리는 엄마가 아이의 인생에 바라는 것이 누구나 누리고 있는 한 조각의 작은 일상임을 알기에 왠지 모를 미안함을 느낄 수도 있다.

일상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란 얼마나 경이로운가. 그러나 아주 작은 소원을 가지고 있고, 애쓰고 있는 주인공들을 응원하는 마음이 애틋해 진다고 해도, 시종일관 능청스럽고 유쾌하고 생동감 넘치는 연출로 슬픔은 잠시 스쳐갈 뿐이다.  

영화는 뉴욕타임즈가 선정한 베스트셀러에 118주 동안 오르며 현재까지 전 세계 45개국에 출간되어 800만 이상의 독자들을 감동시킨 동명 소설 '원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작품 속 '어기'처럼 남들과 다른 외모의 여자아이를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 만난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완성시킨 이 놀라운 데뷔 소설은 이후 아마존 선정 '이달의 책(Amazon Best Books of the Month for Kids, February 2012)', 북리스트 선정 2012년 '최고의 아동 도서(A Booklist Best of Children's Books, 2012)' 등에 오르며 출판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독립영화 '월플라워'로 평단의 주목을 받은 스티븐 크보스키 감독은 "원작에서 나를 감동시킨 대목은 내가 한 선택이 나를 만든다는 점이었다"고 말한다.  

정확한 말과 친절한 말 중에 선택을 해야 할 상황에서 친절한 말을 고른다면, 누군가가 자신의 헬멧을 벗고 반짝이는 눈을 보여줄 수 있다고 영화는 빗방울처럼 하염없이 속삭인다.  

순간 순간 결정하는 작은 행동들이 우리의 인생이 되는 것이라고, 또한 우리가 지나온 길이 우리 얼굴에 작은 주름으로 남아 저마다의 인생지도를 얼굴에 새기며 나이 들어 가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일이라고.  

영화 '원더'의 스틸컷 = 네이버 블로그
영화 '원더'의 스틸컷 = 네이버 블로그

 

남들과 다른 것은 어기 뿐만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타인으로부터 온전히 이해 받을 수는 없는 작은 우주 속에 살고 있다. 그 누구도 아닌 자기자신이 되는 것은 한편으로 당연하지만 한편으로 가장 큰 용기를 필요로 하기도 한다.  

남들과 많이 다르더라도 자신의 진짜 얼굴을 보여주는 용기를 낸 작은 소년을 연기하는 '어기' 역에는 '룸'으로 전세계 평단의 주목과 극찬을 받아 온 제이콥 트램블레이가,  그의 엄마 '이사벨' 역에는 줄리아 로버츠가, 능청맞으면서도 재미있는 아빠 '네이트' 역에는 '오웬 윌슨'이 분했다.    

2017년 12월 미국개봉 이후에 페이스북 COO 셰릴 샌드버그, 배우 엠마 왓슨, 축구선수 팀 하워드 등 유명인과 셀럽 등이 영화 '원더'를 추천하며 꾸준히 관객을 모아 영화 규모에 비해서는 기적과 같은 놀라운 성적인 전미박스오피스 1억불의 고지를 달성했고, 현재 전 세계 관객들의 얼굴에 미소지도를 그리고 있는 중이다.   

 

글쓴이 이 현 대표 이력은... 

중앙대 영어학과 /
크리스리픽쳐스 인터내셔널 대표 /
쇼박스 해외팀 외화수입 10년 /
BCWW드라마수출팀장 / 
오리콤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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