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청계천과 바르셀로나의 방커 드 카멜
서울 청계천과 바르셀로나의 방커 드 카멜
  • 오섬훈 (주)건축사사무소어반엑스 소장
  • 승인 2018.04.15 12: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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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건축사사무소 어반엑스
방커드카멜. ⓒ (주)건축사사무소 어반엑스

[휴먼에이드] 1930년대 후반 스페인 내전 당시 레지스탕스의 아지트였던 카멜 방커 언덕은 바르셀로나 야경을 보려는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작년 스페인으로 가족 여행을 갔을 때 바르셀로나에서 꼭 가야 할 장소 중 하나였는데, 사실 둘째 딸이 여행 코스를 정했기 때문에 나는 사전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방문했었다. 
버스에서 내려 언덕으로 올라가는 150여 미터의 도로에는 개성이 가득한 집들이 늘어서있어 재미있게 구경하며 올라갔다. 카멜 방커 언덕에 다다르자 올라오는 길과는 또 다른 장면이 나타났다. 솔직히 나는 야경을 구경하기 좋은 그런 언덕일 것으로 상상했었다. 

ⓒ (주)건축사사무소 어반엑스
방커드카멜. ⓒ (주)건축사사무소 어반엑스

폐허가 된 집터에 남아있는 벽체, 몸을 숨긴 채 총을 쐈을 것 같은 작은 구멍이 뚫린 벽들, 용도를 잘 알 수 없지만 중정처럼 생긴 마당, 큰 구멍이 뚫린 벽이 둘러쳐진 곳, 여기저기 산재해 있는 너럭바위처럼 큰 바위들. 그리고 땅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따라 들어가니 토굴 같이 생긴 레지스탕스의 아지트가 보였다. 바르셀로나 시내를 향해 창이 나있는데, 입구 계단을 감추는 철판을 덮으면 도저히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교묘하다. 
아지트의 내부는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것만이 갖춰져 있어 레지스탕스들의 삶을 짐작할 수 있었다. 땅 위에 있는 다양한 형태의 구조물, 땅 속의 요새 같은 생활 근거지. 당시 스페인 내전을 떠올리는 매개가 되는 곳임을 감각적으로 느끼게 된다. 

ⓒ (주)건축사사무소 어반엑스
청계천. ⓒ (주)건축사사무소 어반엑스

 

그런 곳에 가면 늘 머리에 떠오르는 곳이 서울의 청계천이다. 2000년대 초에 청계천 고가도로를 철거하고 청계천을 원상태로 복원하는 계획이 시작되었다. 청계고가 철거 작업 초반에 단국대학교 김정신 교수, 학생들과 함께 청계천 내부를 답사하는 기회를 얻었다. 동대문에서 출발해 청계1가까지 거슬러 올라오는 루트였다. 주의사항을 듣고 땅속으로 내려갔다. 불과 4, 5미터 내려온 것 같은데 ‘여기가 어디지?’라는 물음이 저절로 떠올랐다. 청계천의 폭이 3, 40미터가 훨씬 넘는 것 같았고 바닥에는 웬 거석들이 그렇게 많이 널브러져 있는지. 온몸에 전율이 감돌았다. 순식간에 시간이 5~600년 정도 뒤로 간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오간수문(동대문 옆 서울 성곽 아래 위치한 곳으로 청계천의 물이 빠져나간다)의 기초로 쓰인 거석이 보존되어 있었던 것이다. 오간수문이 있던 곳이라 폭이 넓다는 설명이었다. (현재 오간수문은 다른 곳에 복원되어 있고 기초돌들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청계1가 쪽으로 올라오는데 곳곳에 옛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모두들 말이 없었다. 너무 뜻밖의 장면을 맞닥뜨렸기 때문일까. 15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좀 과장되게 말하면 로마나 아테네의 폐허에서 느끼는 감정과도 같았다. 어떤 곳은 큰 바위를 주춧돌 삼아 청계고가의 기둥이 세워져 있고, 또 어떤 곳은 당시 청계천을 건너는 다리 중 상판이 없는 채로 바닥에 놓인 주춧돌과 그 위에 세워진 화강석 기둥 대여섯 개가 그대로 방치되어(광통교인지 모전교인지 알 수 없었다) 있었다. 그나마 청계천 복개공사 때 철거했던 수표교는 원형을 유지한 상태로 장충단 공원에 있다. 청계천의 홍수 수위를 측정하는 수푯돌은 세종대왕 기념관에 있다고 한다. 

ⓒ (주)건축사사무소 어반엑스
청계천. ⓒ (주)건축사사무소 어반엑스

 

고가도로를 건설할 때는 군사 정권 시절이라 모든 공정을 서둘렀던 탓에 그 아래 청계천은 그대로 두었을 것이라는 짐작을 했다. 그래서 그런대로 보존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새로 복원하면서 그 모든 것을 걷어 치워버리다니. 서울, 아니 한양의 또 다른 생활 인프라였을 몇 백년의 흔적과 유산을! 지금의 청계천은 도심지에 있는 물이 흐르는(그것도 한강에서 퍼오는 물과 약간의 인근 지하수) 분위기 좋은 공원에 불과하다. 

청계천은 공원이 아니었다. 한양의 생활 중심지였고 물길의 흐름을 담당하는 중요한 600년 역사 도시의 인프라였다. 서울은 지금 도시재생의 큰 틀을 짜는 중이다. 종묘와 창경궁 연결, 서울 성곽 회복을 비롯해 세운상가 리뉴얼 등. 현재의 물리적인 환경뿐 아니라 역사적인 맥락을 고려한다면 어떤 형태로든 청계천도 리뉴얼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표교가 제자리를 찾고 광통교인지 모전교인지 알 수 없는 채로 남아있던 다리의 기둥이나 오간수문의 기초 등의 유구도 제자리에서 드러나야 할 것이다.  

시대가 변하면 건축이나 도시 시설물이 가진 원래의 기능이 유지되기 어렵다. 그러나 어떤 장소가 가진 물리적 흔적과 형태는 역사이기도 하고, 그곳에 담겼던 생활과 삶의 문화를 추정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기 때문에 그 흔적과 형태가 온전하게 드러나서 보존되어야 한다.  

 


 

어반엑스 대표 오섬훈 건축사는...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서울대대학원을 졸업하고 AA스쿨에서 수학했다. 공간건축 설계본부장을 역임하였고 현재 (주)건축사사무소 어반엑스(urbanEx) 대표이사, 국민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중이며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활동중이다. 주요작품으로는 통영수산과학관, 한성대도서관, 송도산업기술문화Complex, 대치동 자동차전시장, B타워, 새마을금고사옥, 과천중앙교회 등이 있다. 

어반엑스는 접두사 ex와 urban의 합성어로써 도시의 일상(urbanlife)을 네트워크한 우리의 복합적 작업과정과 태도를 의미한다. free from urban 즉, 현재의 도시적 상황을 바탕으로 또 다른 도시를 꿈꾸며 Extreme, Exposition, Exposure 등의 의미로 통하는 도시의 일상을 표현하고자 한다. 도시일상에서 발생한 몇 개의 전략들이 겹쳐지거나 변주되어 큰틀의 통합된 이미지를 갖는 Nomadic flow에 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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