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아닌 마음으로 봐요" 김근태 화백 4월 전시회 개최
"눈이 아닌 마음으로 봐요" 김근태 화백 4월 전시회 개최
  • 박희남 기자
  • 승인 2019.02.22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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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전당' 1층 전관 600작 전시⋯체험학습 등 다양한 이벤트 준비

[휴먼에이드] 국내 화가 중 최초로 미국 뉴욕에 위치한 유엔본부에 초청받아 전시회를 개최한 김근태 화백은 지적 장애인의 아픔을 화폭에 담아 온 세계유일의 작가다.

그가 4월 장애인의 날을 맞이해 예술의 전당에서 특별한 전시회를 연다. 마음 깊은 곳을 움직이는 김근태 화백만의 특별한 그림은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기 때문에 전시회가 열리는 때마다 작품을 찾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낙연 국무총리와 오준 유엔대사, 박재동 화백 등 많은 이들도 김근태 화백을 오랫동안 응원하고 지지해 왔다.  

진심어린 인터뷰에 응해준 김근태 화백에게 감사를 전한다. = 신현희 포토그래퍼

김근태 화백은 전시회 준비로 바쁜 중에도 부인 최호순 씨와 함께 이번 인터뷰를 위해 꼭두새벽 목포에서 서울행 버스를 탔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잘 들리지 않는다며, 조금은 큰 소리로 질문 해줄 수 있냐고 묻던 김근태 화백 역시 장애인이다.

청각장애와 시각장애를 지닌 그가 장애인을 그린다는 점에 많은 사람들은 '왜'라는 의문을 던진다. 그리고 김 화백 본인도 이러한 시선을 잘 알고 있다.

"처음부터 장애인을 그림에 담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며 담담한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갔다. 과거 김 화백은 평범하게 풍경화를 그리곤 했다. 그러던 중 5.18을 만났고,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운명처럼 장애인들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5.18 당시 시민군 일원으로 전남도청에 있는 경비를 맡았습니다.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끔찍한 현장을 눈으로 목격했고, 시체를 처리하는 일을 맡아서 했어요."

군대가 시민과 학생들을 진압하기 위해 온 다는 사실을 미리 접하게 된 김 화백은 가족들로부터 어서 피신하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시체를 두고 그냥 갈 수는 없었다. 전혀 무섭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터. 죽음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겁이 나기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그는 살고자 하는 본능에 굴복, 탈출을 시도했고 '살아남은 자'가 됐다.

당시 5.18광주민주화운동은 많은 젊은 학생들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적 사건이었다. 살아남은 자들에게도 참사의 고통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고, 결국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한 김 화백은 홀로 오랜 방황의 시간을 보낸 후 모든 걸 접어둔 채 파리로 유학의 길을 택했다. 그곳에서 공부한 것이 '인체'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온 그가 택한 것은 '인간'이었다. 아름다운 풍경과 화려한 도심이 아닌 사람을 스케치에 담고 싶어 한 그는 역전을 찾아 그곳에 쉬고 있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무작정 그림에 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에 대한 갈증은 채워지지 않았고, 이번에는 고아원을 방문해 아이들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화폭에 쏟아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우연히 발달장애인과 지적장애인들이 누워 생활하는 공동체를 알게 됐다. 

김근태 화백의 작품들.
김근태 화백의 작품들.

"그 때 강한 느낌을 받았어요. 마치 5.18 시체가 누워있는 것 같았습니다. 누워있는 자의 아픔을 표현하고 싶었고 오히려 아이들을 그리면서 나의 상처도 치유 받을 수 있었습니다."

장애인을 그리면서 치유를 받았고, 행복을 느꼈다는 김근태 화백.

"나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나의 신체적 한계는 오히려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감사히 여깁니다. 몸은 아프지만 덕분에 더 몰입할 수 있고 이로 인해 더 좋은 작품으로 천사들의 목소리를 대신 들려줄 수 있어 참 다행입니다."

그래서 일까. 그는 장애인아동들을 그릴 때 유난히 더 밝은 색깔을 사용한다. 친구들의 순수한 세계를 표현하고 싶었던 그는 장애인은 그림으로 다루기에 다소 민감한 소재라고 판단, 자칫 잘못하면 그들에게 모욕감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이만큼의 때도 묻어서는 안 된다고 늘 신경을 쓰고 각인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꺼내기 어려운 말을 너무나 태연하게 말했다. 30년 간 장애인을 그리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자신도 자폐아가 되고 있는 것. 본인 스스로 자폐아라고 인정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단언했다.  

"나를 이상한 놈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습니다. 그런 시선들을 나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점점 고립되어가고 있는 나를 발견했습니다. 인간들은 모두 자폐아입니다. 따지고 보면 각자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데, 거기 가치를 부여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다른 것뿐입니다."

30년간 '들꽃처럼 별들처럼'이라는 명칭을 계속 써왔는데, 이번 전시회의 명칭 바뀐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나는 자폐아다. 그러므로 자유하다'라는 이름으로 개최될 이번 전시회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만남이라는 컨셉트로 진행될 예정이다. 유화는 물론, 이번 전시회에서는 먹을 이용해 한지에 친구들의 얼굴을 그리는 등 동서양의 만남을 엿볼 수 있다. 또 예술의 전당 1층 전관을 대여해 무려 100m 길이의 통로를 사용해 전시하고 제 2의 백남준이라 불리는 이이남 작가가 미디어아트를 통해 이를 표현할 예정이다.  

김만희 Life&Art 대표 "이번 전시회는 장애인뿐만 아니라 비장애인도 함께 즐기는 자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김 화백 역시 "이번 전시회를 통해 내면의 상처를 같이 호흡하고 영혼의 치료가 될 수 있는 뜻 깊은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가장 어두운 밤에 발견한 가장 따듯한 위로처럼 사람마다가 각자의 아픔과 상처를 작품을 통해 치유하기를 소망하는 김근태 화백.

 

김근태 화백이 휴먼에이드포스트 송창진 인턴기자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송창진 기자는 휴먼에이드포스트에서 국내최초로 발달장애인 인턴기자로 활동, 포토뉴스를 취재하고 있다. = 신현희 포토그래퍼 

 

그는 장애인 아동 미술 교육에도 관심이 많다. 실제로 장애인 아동들의 그림을 가르치고 있는데, 아동들의 집중도가 매우 뛰어나 완성된 그림을 보고 있으면 굉장히 놀라울 때가 많다. '천사들도 충분히 화가가 될 수 있구나' 이런 생각이 머리에 들자 김 화백의 하루가 더 바빠졌다. 사비를 지불해 장애인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며 직접 전시회를 열어주기도 하는 것만 봐도 그가 장애인 아동들을 위하는 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김근태 화백의 작품들.
김근태 화백의 작품.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어준 김 화백의 다음 목적지는 아프리카다. 올 여름쯤 아프리카에 갈 계획이다. "경제지원은 필요 없다. 문화지원을 부탁드린다"는 유네스코 대사의 말 한마디가 그의 마음을 촉촉이 적셨다.

김 화백은 "세계 각국에 있는 장애인 아이들을 화가로 길러주고 싶다"는 꿈을 밝혔다. 그가 아이들에게 심어주는 건 단순히 미술적 이론이 아니라, 꿈 그리고 희망이다. 언젠가는 뉴욕 한복판에 장애인아동들의 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 전시장을 만들고 싶다는 그의 꿈이 머지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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