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기념관,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역사를 한 눈에
전태일 기념관,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역사를 한 눈에
  • 박마틴 기자
  • 승인 2019.08.20 13: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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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한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살다간 '청년 전태일의 꿈'을 엿볼 수 있어요
전태일이 근로 감독관에게 보낸 자필 편지가 기념관 전면에 디자인 되어있어요. ⓒ 박마틴 기자
60년대 평화시장의 봉제작업장을 재현한 높이 1.5m의 작은 다락방이에요. ⓒ 박마틴 기자
전태일의 분신 이후 노동운동 역사가 전시되어 있고, 그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나무에 걸려 있어요. ⓒ 박마틴 기자

[휴먼에이드] '청년 전태일'이 세상을 떠난지 50여년이 된 올해 그가 분신했던 평화시장 근처 청계천 수표교에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기념관'이 생겨 지난 8월7일 다녀왔어요.

전태일은 1970년 '우리는 재봉틀이 아니다'라며 근로기준법전을 가슴에 품고 분신 자살한 23세 봉제노동자 청년이었어요.

기념관 건물은 1969년 그가 근로감독관에게 보낸 자필편지가 디자인되어 눈길을 끌었고, 3층 상설 전시장에서는 그의 삶과 꿈을 만나볼 수 있었어요.

전태일은 한국노동운동을 상징하는 사람이에요. 1948년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17세부터 평화시장에서 일하기 시작했어요. 그 당시 봉제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햇볕이 들지 않고 먼지가 가득한 1.5m 천장의 좁은 작업장에서 저임금을 받으며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고 해요.

1968년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알게된 그는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일하다 근로기준법의 준수를 외치며 죽음을 택하였어요. 그의 죽음은 사회적으로 큰 이슈를 불러 일으켰고, 노조운동이 활발히 전개되는 밑거름이 되었죠. 이어 1987년 노조의 합법화로까지 이어지게 되었어요.

청년 전태일의 삶을 둘러보며 한국 노동운동사에 남긴 발자취를 따라가 보았어요. 자신보다 어려운 동료와 이웃을 먼저 도와주기도 하고,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끝까지 노력한 그의 실천력을 통해 그가 왜 아름다운 청년인지를 알게되었어요.

이 기념관에는 노동운동과 관련된 전시와 공연, 교육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으며 어려움에 처한 노동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서울노동권익센터가 들어와 있어요.

 

 

* 현재 박마틴 기자는 휴먼에이드포스트에서 생생한 '포토뉴스'를 취재하고 발굴하고 있는 발달장애 기자입니다. '쉬운말뉴스' 감수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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