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지만 밝은 어린이들과의 만남이 기억에 남아요
가난하지만 밝은 어린이들과의 만남이 기억에 남아요
  • 김민진 기자
  • 승인 2019.09.24 16: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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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브더칠드런 오준 이사장을 만났어요
오준이사장이 안내데스크 앞에 서있는 모습이에요. ⓒ 휴먼에이드포스트
오준이사장이 안내데스크 앞에 서있는 모습이에요. ⓒ 휴먼에이드포스트

[휴먼에이드] 지난 9월20일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세이브더칠드런 빌딩에서 오준 이사장님을 만났어요. '세이브더칠드런'은 세계 최대 규모의 아동 구호 비정부기구(NGO)인 기관이에요.

▲ '세이브더칠드런' 이사장님으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 작년 7월에 '세이브더칠드런' 이사장에 취임해 지금까지 1년 2개월이 되었어요. 지난 8월에 네팔 롤파 지역에 다녀온 일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이곳은 가난한 산간지역으로 학생들이 공부하기 어려운 환경이에요.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이곳 학생들을 위해 학교를 지어주고 교재도 지원해주는 사업을 하고 있어요. 
그곳 학생들을 만났을 때 정말 기뻤어요. 우리 일행이 방문했을 때 이 학생들이 우리를 환영하기 위해 춤을 춰주었어요. 

롤파는 산악지역이라 걸어서 학교를 다녀야 하는데 가까운 경우에는 1시간, 먼 경우에는 하루에 왕복 4시간을 걷는다고 해요.
이렇게 어려운 환경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밝은 모습으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어요. 
중학생이나 고등학생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1학년밖에 안 되는 학생도 학교를 걸어서 가야 하기 때문에 수업 시작 시간이 10시예요. 

이처럼 가난하고 낙후된 지역에서 하루에 단돈 2천원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는 아직도 8억 명이나 있어요. 특히 가난한 형편에서 가장 고통받는 대상이 어린이들이잖아요. 
어린이는 어른에게 의존해 살아야 하는데 가난한 형편에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시켜줄 수 있겠어요? 그래서 네팔 같은 나라에서는 아이들을 학교에 안 보내고 일을 시키는 부모들도 많아요. 그런 점을 고치기 위해 아이들에게 일을 시키지 말고 학교로 보내야 한다는 운동을 펼치고 있어요. 
또 먹고살기 힘드니까 16, 17살밖에 안 된 여자아이들을 결혼시키는 경우도 많아요. 그래서 스무 살 이전에 결혼을 금지하는 운동도 하고 있어요.  

빨간 염소그림이 전시된 벽앞에 서있는 오준이사장. ⓒ 휴먼에이드포스트
오 이사장이 '아프리카 빨간염소 그리기' 전시판 앞에 서 있어요. ⓒ 휴먼에이드포스트

▲ 지나가다 세이브더칠드런의 '신생아 살리기 모자 뜨기 캠페인' 홍보부스를 보았어요. 그런데 '아프리카 같은 더운 나라에서 뜨개질로 아동용 모자를 만드는 봉사활동이 필요할까?'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이 캠페인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 뜨개질 모자는 추위를 피하는 용도가 아니라 갓난아기, 즉 신생아를 위한 것이에요. 특히, 말리와 코트디부아르와 같이 가난한 나라에서는 아기를 병원이 아닌 집에서 낳는 경우가 많고 병원에서 낳더라도 미숙아를 낳을 경우 아기를 안전하게 기를 만한 인큐베이터가 없어요. 인큐베이터는 엄마 뱃속과 비슷한 환경을 갖춘 시설로 굉장히 비싸기 때문이에요. 가난한 나라에서는 아기가 미숙아로 태어나면 그 아기를 엄마 배위에 올려놓고 천 같은 걸로 덮거나 아기에게 모자를 씌워준다고 해요. 그러면 아기의 체온이 1, 2도로 올라가서 저체온증에 걸리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지요. 
따라서 신생아 모자는 추위를 막기 위해서라기보다 미숙아로 태어난 신생아들에게 인큐베이터 대신 아기를 보호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시도한 일이었어요. 
제가 2017년에 실제로 방글라데시의 한 병원에 방문해서 엄마가 미숙아를 배위에 올려놓은 모습을 보았는데 오히려 인큐베이터에서 자란 아이보다 더 효과가 좋다고 해요. 
그런 의미에서 세이브더칠드런이 신생아 모자 뜨기 운동을 10년 연속 시행하고 있어요. 감사하게도 이 캠페인에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서 수백만 개의 모자를 모았어요. 

▲ UN에서 일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 저 개인적인 생각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따르면 지난 2014년 12월 UN 안전보장 이사회에서 북한 인권 문제가 최초로 의제로 선정됐을 때 연설을 한 일이에요. 
북한 주민들은 우리에게 아무나가 아니고 분단된 지역에 사는 우리의 형제자매들이고, 따라서 그들의 인권은 우리에게 각별한 생각과 감정을 갖게 한다는 취지로 연설을 했어요. 
제가 UN 외교관들에게 이야기한 영상을 많은 국민들이 유튜브를 통해 보고는 감동적인 연설로 기억해 주셨어요. 
저 개인으로는 똑 부러지게 북한 인권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경제, 사회적 이슈나 장애인 권리협약, 장애인 인권 관련 단체를 많이 알게 된 것도 기억에 남아요.

취재: 김민진 기자

정리:정진숙 편집국장

 


* 현재 김민진 기자는 휴먼에이드포스트에서 생생한 '포토뉴스'를 취재하고 발굴하고 있는 발달장애 기자입니다. '쉬운말뉴스' 감수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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