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진 기자의 서울미래유산 기행 ⑤ 상동교회
송창진 기자의 서울미래유산 기행 ⑤ 상동교회
  • 송창진 기자
  • 승인 2019.12.13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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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들을 배출한 민족운동의 중심지예요
남대문로에 있는 상동교회예요. ⓒ 송창진 기자
남대문로에 있는 상동교회예요. ⓒ 송창진 기자

[휴먼에이드포스트] 상동교회는 서울 중구 남대문로에 위치한 오래된 교회예요. 

1888년 미국 감리교회에서 파송된 의료선교사 스크랜튼(W.B. Scranton)이 서울 남대문로에 세운 교회로 처음에는 약국과 병원을 차려 의료선교를 했다고 해요.

상동교회 자리는 조선 13대 임금 명종 때 영의정을 지낸 상진대감이 살던 집터예요. 집터가 있었던 동네를 상정승골이라고 한 데서 '상동'이라는 지명이 유래했어요. 그래서  교회이름도 상동이라 정했어요.

상동교회는 서울미래유산예요. ⓒ 송창진 기자
상동교회는 조선시대 상진대감의 집터였어요 . ⓒ 송창진 기자

상동교회는 1897년 9월 전덕기와 40여명의 청년들이 상동청년회를 만들어 독립운동의 중심으로 떠올랐어요. 

이들은 독립협회의 정신을 이어받아 상동교회 지하실에서 모임을 가지면서 국권수호 운동과 애국계몽 운동을 이어 나갔어요.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전덕기 목사를 중심으로 어깨에 도끼를 메고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시위하며 조약무효 상소운동을 벌였어요. 대표인물이 전덕기 목사, 백범 김구, 최재학, 이준, 이동녕이며 이후 독립투사들이 교회에 자주 모이게 되었어요.

1907년 4월 상동교회 지하실에서 헤이그 특사사건을 모의했고 안창호 · 윤치호 등이 항일 비밀결사 조직인 신민회(新民會)를 조직하고, 주시경 선생을 통한 한글보급운동도 진행하는 등  상동교회 출신이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상동교회는 조선시대 상진 집터였어요 . ⓒ 송창진 기자
서울미래유산 명판과 상동교회의 역사를 설명해놓은 표지판이에요 . ⓒ 송창진 기자

1974년 옛교회 예배당을 헐고 1997년 새로나백화점을 설립하여  경영해 오다가 1998년 IMF 외환위기 전후로 새로나백화점을 폐점한 후 일반 상가들이 이용하고 있어요. 

헤이그 밀사 사건을 계획한 역사적인 현장이며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배출하며 민족운동의 중심지로 활용되었던 장소인 상동교회는 2013년 그 보존가치를 인정받아 서울미래유산에 그 이름을 올렸어요. 
 

 

* 현재 송창진 기자는 휴먼에이드포스트에서 생생한 '포토뉴스'를 취재하고 발굴하고 있는 발달장애 기자입니다. '쉬운말뉴스' 감수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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