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말뉴스] 발달장애인도 쉽게 쓰고 이해하는 쉬운 우리말 만들기➅
[쉬운말뉴스] 발달장애인도 쉽게 쓰고 이해하는 쉬운 우리말 만들기➅
  • 휴먼에이드포스트
  • 승인 2020.07.09 15: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휴먼에이드포스트] 휴먼에이드포스트는 지난 5월초 문화체육관광부와 국어문화원연합회에서 공모한 '2020 쉬운 우리말 쓰기 제작 지원 사업'에 선정됐습니다. 이에 '발달장애인도 쉽게 쓰고 이해하는 쉬운 우리말 만들기'를 기획해 16차례에 걸쳐 실을 예정입니다.

이 사업의 주요취지는 발달장애인들이 직접 감수하고 쉬운 말로 바꿈으로써 발달장애인뿐 아니라 다문화가정, 새터민, 외국인 등 정보소외층에게 아름답고 쉬운 우리말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특히 보도자료나 공공언어 등 일상생활에서 꼭 알아야 할 정보를 쉬운 우리말로 다시 해석해 그들이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데 불이익을 보거나 불편함이 없도록 할 예정입니다.

이에 휴먼에이드포스트에서는 꼭 알아야 할 공공성 있는 내용의 보도자료 4회, 교통표지판과 안내판, 여행지 및 유적지의 안내문, 뮤지컬, 문화공연 등의 안내자료 12회를 통해 어려운 단어나 문장을 쉬운 우리말로 다시 다듬어 알리고자 합니다. - 편집자주 


여섯 번째 순서로 여행 및 유적지에서의 안내문에 대해 알아보았다.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이 전면 통제되었을 뿐 아니라 휴가철을 맞아 국내 여행이 활기를 띄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여전히 사그라들 분위기가 아니라 더욱 철저히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 이는 여행지에서도 마찬가지다.

국내 여행, 과연 어디로 가는 것이 좋을까. 

고민하고 있다면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www.heritage.go.kr)에 들어가 우리 문화에 대해 다시 한번 알아보고 이곳을 중심으로 여행을 해도 좋을 것 같다. 

그래서 여행 첫 순서로 국보1호 숭례문과 사육신묘를 찾아 유례와 이름에 담긴 뜻 등을 알아보았다. 사실 숭례문과 사육신묘 등은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외국인이나 해외에서 온 사람들, 그리고 어린 학생들이 단체로 많이 찾는 곳이다.

이에 더 쉬운말로 쓰여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가장 기본이 되는 소개말조차 어렵다. 휴먼에이드포스트에서는 숭례문과 사육신묘를 찾아가 이곳에서 가장 먼저 읽게 되는 소개의 글을 쉬운 말로 바꿔보았다.

 

국보1호 숭례문 ⓒ 휴먼에이드포스트
국보1호 숭례문의 안내문. ⓒ 휴먼에이드포스트

서울 숭례문

숭례문은 조선 태조 7년(1398)에 한양도성의 남쪽 대문으로 세워졌다. 그 후 세종 30년(1448), 성종 10년(1479), 고종 연간에 큰 수리가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매일 밤 인정(10시 무렵)에 문을 닫았다가 다음 날 아침 파루(4시 무렵)에 문을 열었는데, 이때 문루에 종을 달아 그 시간을 알렸다. 장마나 가뭄이 심할 때는 임금이 몸소 기청제와 기우제를 지내는 등 숭례문에서는 국가의 중요한 행사가 거행되곤 하였다.

석축 위에 세워진 중층 누각은 장식이 간결하고 내부 구조가 견실하여 조선 초기의 건축기법을 잘 간직하고 있다. 1907년부터 1908년 사이에는 좌우 성곽이 철거되었으며, 한국전쟁 때 피해를 입어 1961년부터 1963년 사이에 해체보수를 하였다. 2008년 2월 10일 방화 사건으로 크게 훼손되어 2013년 4월까지 복구하였으며, 이때 좌우 성곽도 함께 복원하였다.

[쉬운말] 서울 숭례문
숭례문은 조선 태조 7년(1398)에 한양이라는 도시의 성을 지키는 남쪽 대문으로 세워졌다. 그 후 세종 30년(1448), 성종 10년(1479), 고종이 왕위에 있는 동안에 크게 문을 고쳤다. 조선시대에는 매일 밤 10시 무렵에 문을 닫았다가, 다음 날 새벽 4시 무렵에 문을 열었다. 이때 성문의 바깥문 위에 지은 다락집(문루라고 불러요)에 종을 달아 문 여는 시간을 알렸다.

또 비가 많이 오거나(장마)나 비가 많이 오지 않아서 땅이 마른 시기(가뭄)에는 임금이 직접 비 그치기를 비는 제사와 비 오기를 비는 제사를 지내는 등 국가의 중요한 행사를 숭례문에서 진행하기도 했다.

돌로 쌓아서 만든 벽(석축이라고 불러요) 위에 세워진 중간 높이의 동서남북을 다 볼 수 있도록 문과 벽이 없이 지은 다락집(누각이라고 불러요)은 간단하게 꾸며졌고, 안에는 튼튼하게 만들어져서 조선 초기의 건축기법을 잘 간직하고 있다.

1907년부터 1908년 사이에 왼쪽과 오른쪽의 모든 적을 막기 위하여 흙이나 돌 따위로 높이 쌓아 만든 담(성곽이라고 불러요)을 없앴다. 1950년 6월25일 벌어진 한국전쟁 때 피해를 입어 1961년부터 1963년 사이에 해체보수를 하였다. 해체보수는 조금씩 따로 분리해서 보전하는 것을 말한다. 이후 지난 2008년 2월10일 숭례문에 불이 나 크게 망가져, 2013년 4월까지 고쳤다. 이때 없앴던 왼쪽과 오른쪽의 흙이나 돌따위로 높이 쌓아 만든 담(성곽)을 함께 원래대로 만들었다.

 

사육신묘 ⓒ 휴먼에이드포스트
사육신묘 안내문. ⓒ 휴먼에이드포스트

사육신묘

이곳은 조선 제6대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목숨을 바친 사육신을 모신 곳이다. 단종 3년 음력 윤6월(1455) 단종의 숙부인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고 즉위하매 이에 의분을 품은 충신들이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탄로되어 참혹한 최후를 마치니 이들을 훗날 사육신이라 부르고 있다.
사육신의 충성심과 장렬한 의기를 추모하고자 숙종 7년(1681)이 산 기슭에 민절서원을 세웠고, 정조 6년(1782)에는 신도비가 세워져 전해오다가, 1955년 5월에 육각의 사육신비를 세웠다.
1978년 서울특별시에서는 이 의로운 충혼들을 위로하고 불굴의 충의 정신을 널리 현창하고자 3,240평이었던 묘역을 9,370평으로 확장하고 의절사, 불이문, 홍살문, 비각을 새로 지어 충효사상의 실천도장으로 정화하였다.
본래 이 묘역에는 박팽년, 성삼문, 유응부, 이개의 묘만 있었으나 그후 하위지, 류성원, 김문기의 허묘도 함께 추봉하였다.

 

[쉬운말] 사육신묘

이곳은 조선 제6대 단종을 다시 왕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목숨을 바친 여섯 명의 신하를 모신 곳이다. 단종 3년 음력 윤6월(1455) 단종의 작은아버지인 수양대군이 왕 자리를 억지로 빼앗고 임금의 자리에 오르자, 이를 옳지 못한 일이라고 판단한 충성스러운 신하들이 단종을 다시 왕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도와주다가 끝내 비참하고 끔찍하게 삶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우리는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이들을 '사육신'이라 부르고 있다.

여섯 명의 신하가 보여준 충성심과 씩씩하고 장한 마음을 기억하기 위해 숙종 7년(1681)이 산의 비탈길에 여섯 명의 신하를 모시는 사당을 세웠고, 정조 6년(1782)에는 죽은 이들의 역사적으로 잘한 일(업적)을 생각하고 기억하기 비석이 세워져 전해오다가 1955년 5월에 여섯 개의 사육신비를 세웠다.

1978년 서울특별시에서는 충성스럽고 의로운 마음을 위로하고 뜻을 꺾지 않은 정신을 널리 알리고자 3240평이었던 묘역을 9370평으로 넓히고 의절사, 불이문, 홍살문, 비각을 새로 지었다. 그리고 이곳을 나라에 충성하고 효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으로 삼았다. 원래 이 묘역에는 박팽년, 성삼문, 유응부, 이개의 무덤만 있었으나 그후 풀에 묻혀 엉망이었던 하위지, 류성원, 김문기 무덤 역시 충신으로 인정받아 정리하고 제대로 갖추어서 함께 모셨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