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일화 작가의 예술산책] 다작의 힘
[홍일화 작가의 예술산책] 다작의 힘
  • 홍일화 편집위원
  • 승인 2020.08.26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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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에이드포스트] 호러 소설로 잘 알려진 스티븐 킹은 뉴욕타임즈에 '소설가의 다작에 지나침이 있는가?'에 대한 칼럼을 다룬바 있다. 분수처럼 솟아오르는 창작의욕을 바탕으로 한 다작은 작가에게 약일까? 독일까?

피카소의 경우 그가 남김 작품 수는 대략 50,000점에 이르는데 작품의 종류도 다양해서 회화만 1885점이고 조각 1228점, 도자기 2280점, 스케치 7089점, 타피스리 342점, 150권의 크로키노트에 판화작품이 약 3만여 점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업노트인 코덱스(Codex Leicester)는 1만 3000여장을 만들어졌으며 현재 7000여장이 남아있다. 그리고 빌 게이츠가 72쪽짜리 코덱스 해머를 3100만 달러에 구입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홍일화 작가
ⓒ 홍일화 작가

코덱스에는 예술적인 스케치부터 과학적 창조물에 대한 아이디어에 대한 구상이 적혀 있으며 수학, 자연과학, 건축학, 해부학, 기술, 음악 등의 다양한 주제를 망라해놓은 다빈치의 혁신적 접근법의 증거이며 노력의 산물이다.

반 고흐는 37살의 나이에 요절함에도 불구하고 2000여점의 작품을 남겼다. 900여점의 유화작품과 1100개 이상의 스케치를 남겼다. 그의 화풍과 소재 또한 다양했다. 초상화와 해바라기 시리즈를 비롯하여 야경과 풍경, 사물에 대한 관찰을 통해 정물화를 그렸으며 또한 인상파, 후기인상파, 표현주의, 야수파, 그리고 상징주의에 이르는 다양한 표현양식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였다. 모든 경우라 그런 것은 아니지만 다작을 한 천재 작가들의 경우 결코 관습적이지 않았고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다양한 변화를 추구해냈다.

하지만 다작을 한다는 것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가지고 있는 이들 또한 많이 있다. 작품 한 작품에 모든 심혈을 기울여야지 공장의 기계처럼 찍어내듯이 생산이란 단어로 예술을 하락 시키면 안 된다는 의견이 그 대표적 이유이다.

ⓒ 홍일화 작가
ⓒ 홍일화 작가

반면 나는 다작에 손을 든다. 기계처럼 찍어낸다는 표현에는 반대지만 다양한 시도에 의한 무수한 연습과 노력 속에서 일구어내는 변화야 말로 작가가 가져야 한다는 기본 소양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암튼 다작에 관한 찬반론은 예전에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예술가들은 무조건 새로운 것만을 찾아가며 신제품을 만들어내는 발명가들이 아니라 이미 남들이 해놓은 것에 대한 반복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올바른 표현 같다. 다시 말해 새로운 걸 찾으려고 하는 게 아티스트의 본능이 아니라 반복되는 걸 피하고 싶은 게 아티스트의 본능이다.

다소 직설적일 수 있으나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 속에 남이랑 같은 걸 한다는 게 싫은 것이다. 남들보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게 좀 더 뚜렷하고 그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주변 환경은 신경 쓰지 않고 그냥 하는 것이다. 생각이 너무 많으면 또 못하는 직업이 예술가다.

반면에 어떤 작가들은 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이라 예술을 한다고 표현한다. 이런 사람들도 만나보긴 했지만 내가 만나본 수많은 예술가들은 전자의 경우가 더 많았다. 다른 분야의 경우에 대해 감히 말 할 수는 없지만 미술 분야에 있어 대다수의 작가들은 이것저것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잘 만들고 수리도 잘하며 요리까지 잘한다. 아무래도 미술이라는 게 스케치하고 뚝딱 뚝딱 만들고 색칠하고 마감까지 혼자서 다하다 보니 문서작성 빼놓고는 웬만한 일은 다 잘하는 것 같다.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일 수 있지만 어디선가 요리사를 제외한 직업별 요리 실력에 대한 조사결과를 본 기억이 난다. 나의 기억 속에 직업별 일인자는 미술인들이었다. 주변에 있는 미술인들을 보면 요리에 대한 전문지식을 가지고 요리를 하기 보다는 색의 배열과 양적 차이를 눈으로 보며 어림짐작 대충대충 한다. 그런데 맛있다. 그냥 그림 그릴 때 색 배합 하듯이 요리하는 게 틀린 일은 아닌 것 같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건 이것 밖에 할 줄 몰라서 하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들이 예술가들이다.

Black & White 작품은 2년에 걸쳐 8호(46x38cm)크기로 총 200점을 그렸다.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검정색의 실존인물과 시간의 흐름이 더욱더 가치를 더하는 하얀색의 명화 속 여인들이다. 초상화 작업을 하는데 튼튼한 밑바탕이 되어준 작업이며 이 과정을 통해 그린다는 것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극복하는 좋은 기회가 되어준 연작이다.

내 경우 다작의 근원은 불안감에서 표출된다. 무언가를 하지 않고 있으면 불안하고 하루라도 그림을 안 그리거나 발상을 떠올리지 못하면 불안하다. 다소 쫓기는 듯 한 불안감에 의해 작업을 한다는 또 다른 불안감이 생기기는 하지만 목이 마르다. 계속 목이 마르다. 무언가 더 좋은 것을 해내고 이루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200점의 초상화 연작을 하는 동안 너무나도 못 그릴 때도 있었고 더 잘 그릴 때도 있었다. 심각할 정도의 기복도 있었다. 크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 속에서 내가 해보고 싶은 다양한 붓의 변화를 시도해 봤고 그 과정을 통해 내가 좋아하는 성질의 것도 찾아낼 수 있었다.

앞으로 어떤 식의 결과물을 내놓을지는 나 스스로도 모르겠지만 더 나은 것 더 좋은 것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에 목이 마르고 이 무한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무한한 노력을 하고 다작을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림으로 어떤 사조를 이루거나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야겠다는 바람보다는 그림을 그리고 싶고 그림 그리는 걸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다. 계속 무언가를 그리고 싶다.

글_홍일화 미술작가

여성의 미, 아름다움의 조건에 대해 회화적인 성찰을 보여준 작품을 그리고 있는 명성있는 재불작가로 현재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왕성한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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