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경의 맛있는 칼럼] 흙투성이 모습 뒤에 숨은 상아색 맛 덩어리
[김민경의 맛있는 칼럼] 흙투성이 모습 뒤에 숨은 상아색 맛 덩어리
  • 김민경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8.26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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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긋하고 우아한 가을 뿌리채소

[휴먼에이드포스트] 까마득하게 높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울긋불긋 옷을 갈아입는 자연을 감상하기 좋은 가을이 도착했다. 따끈하게 내리쬐는 마른 햇빛, 그늘 아래의 산득산득함, 아침저녁 코끝에 스미는 차가운 상쾌함이 얼마나 좋은 때인가. 하지만 전 세계를 뒤흔드는 전염병으로 인해 우리의 외출은 발이 꽁꽁 묶였다. 봐도 봐도 눈이 싱그러워지는 풍경은 일단 양보하지만 혹독한 여름을 이기고 영근 가을의 기운찬 풍미까지 내어줄 수는 없다.

ⓒ뿌리채소 음식
뿌리채소로 만든 음식들. ⓒ 휴먼에이드포스트

가을은 햇곡식과 탐스러운 과일이 풍성한 때라 먹을 것이 넘쳐나지만 그중에도 가을 맛의 '찐'이라 손꼽고 싶은 게 있다. 연근, 마, 우엉, 토란 등이다. 하나같이 땅속에서 캐 올린 것들이라 흙투성이에 생김새나 색이 열매처럼 어여쁘지 않다. 그렇지만 하나 같이 개성 있는 풍미와 식감을 가진 영양 덩어리들이다.

연근은 진흙에서 자라는 연의 뿌리이다. 연근은 암, 수가 있는데 암 연근은 통통하고 길이가 짧으며 요리했을 때 쫀득한 편이다. 수 연근은 길쭉하고 한 손에 쏙 잡히는 굵기이며 아삭한 편이다. 우엉은 작대기처럼 길고 곧은 생김이 특이하며 조리한 다음에도 특유의 아작거리는 식감과 진한 향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다 자란 우엉은 길이가 50~100cm 정도라 캐는 일도 쉽지 않다. 워낙 단단하고 가늘면서 둥근 우엉은 손질이 쉽지 않다. 칼로 연필 깎듯이 저며썰기도 하지만 필러나 채칼을 활용하면 먹기 좋게 손질하기가 수월하다.

ⓒ아이클릭아트
토란과 더덕. ⓒ 아이클릭아트

마 역시 뿌리채소이다. 수분이 적고 비교적 조직이 단단한 장마, 수분이 많고 아삭아삭한 단마가 있다. 열매처럼 나무에 열리는 마도 있지만 시장에 흔히 나오지는 않는다. 곱게 갈아 주스처럼 마시거나 샐러드나 회 등에 곁들여 먹을 때는 단마가 맛있다. 솥밥을 짓거나 죽을 끓일 때, 부침이나 구이용으로는 장마가 어울린다.

마는 껍질째 물에 헹군 다음 껍질을 재빨리 벗겨야 한다. 마에서는 미끌미끌한, 뮤신이라는 성분이 나오기 때문에 피부가 간지러울 수 있다. 과일처럼 아삭한 마는 맛과 향이 투명하리만치 은은하다. 아삭한 다음에 밀려오는 미끈거림과 끈적함이 처음엔 낯설 수 있으나 입에 착 감기 재미에 점점 매료된다.

토란은 포슬포슬한 맛이 좋은 뿌리채소이다. 토란 역시 손질할 때 손이 간지러울 수 있는데 전자레인지에 1분 정도 가열해 껍질을 벗기면 덜하다. 껍질 벗긴 토란은 쌀뜨물에 담가 아린 맛을 빼고 요리해야 한다. 통통한 토란 줄기는 토란 만큼이나 맛이 좋다. 토란처럼 아린 맛이 나므로 소금물에 데친 다음 물에 반나절 정도 담갔다가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 토란대는 주로 말려서 육개장, 들깨탕, 나물로 두루 요리해 먹을 수 있다.

ⓒ우엉연근샐러드
우엉연근 샐러드. ⓒ 휴먼에이드포스트

우엉과 연근이 반찬으로 식탁에 오를 때는 대개 간장을 넣고 달콤 짭조름하게 조리는데 색다른 맛을 추천해본다. 토실토실 잘 영근 우엉과 연근은 반찬 만들 듯 썰어서 식촛물에 살캉하게 데친다. 우엉과 연근을 식촛물에 데치면 쌉사래한 맛도 빠지고 뽀얀 색도 살아난다. 데친 우엉과 연근을 새콤달콤하게 절여 피클처럼 먹으면 맛있다.

흰 밥에 참기름, 통깨, 소금으로 간을 하여 우엉, 연근, 피클을 잘게 다져 넣고 주먹밥을 만들 수 있다. 우엉과 연근 샐러드도 맛있다. 연근은 팔랑팔랑 얇게 썰고, 우엉은 가늘게 채를 썰어 식촛물에 데쳐 시중에 판매하는 참깨 드레싱에 무쳐 먹는다. 초록의 잎채소와 견과류, 건포도 같은 마른 과일을 함께 섞으면 한결 풍성한 접시가 완성!

ⓒ뿌리채소 피클 주먹밥
뿌리채소 피클 주먹밥. ⓒ 휴먼에이드포스트

우엉은 전을 부쳐도 맛있다. 깨끗하게 손질한 우엉을 토막 낸 다음 길게 칼집을 내어 휘어질 정도로 찐다. 칼집 낸 부분을 벌려 도마에 엎어 놓고 나무 밀대처럼 묵직한 물건으로 우엉을 자근자근 두드려 펼쳐, 납작하게 만든다. 간장, 참기름, 깨소금을 섞어 우엉에 골고루 바른다. 밑간한 우엉을 기름 두른 프라이팬에 올려 지진다. 지지면서 묽게 갠 밀가루 물을 우엉에 조금씩 펴 바르면서 앞뒤로 노르스름하게 구워 익힌다. 맛은 고소하고 향은 알싸하며, 아삭하고 쫄깃한 식감이 아주 좋은 건강 채소 전이 된다.

가을 뿌리채소를 한 번에 맛보는 방법도 있다. 연근, 우엉, 마, 토란 등과 좋아하는 밤이나 고구마, 당근, 은행 등을 준비한다. 뿌리채소는 알밤 정도의 한입 크기로 썬다. 이때 연근만 살짝 데쳐 둔다. 다른 채소에 비해 느리게 익기 때문이다. 채소를 모아 작은 찜기에 넣고 소금을 살짝 뿌린 다음 15분 정도 찐다. 엇비슷한 채소를 한꺼번에 찌면 무슨 맛이 날까 싶지만 15분 동안 서로의 맛과 향이 어우러지면서 놀랍게 변한다. 저마다의 식감이 살아나 아삭하고 폭신하고 쫀득한 맛을 골고루 볼 수 있다. 채소 찜에 얇은 소고기를 넣어도 좋고, 미리 조리한 닭고기나 돼지고기 등을 얇게 썰어 함께 쪄도 맛있다. 브로콜리, 콜리플라워, 양배추 등도 잘 어울린다.

연근, 우엉, 토란, 마 등인데 한데 모아 놓고 보니 모두 희고 뽀얀 식재료이다. 채소의 흰색은 플라보노이드라는 식품 색소가 만들어 낸다. 플라보노이드는 항암 효과가 있으며 체내 산화 작용을 억제하고 몸속 유해 물질과 나쁜 콜레스테롤을 체외로 배출한다고 한다. 또한 면역력을 키우는데 좋다고 하니 요즘 같은 때엔 챙겨 먹을 필요가 있다.

김민경/팬앤펜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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