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일화 작가의 예술산책] 그저 하나의 허무한 황홀경일지도
[홍일화 작가의 예술산책] 그저 하나의 허무한 황홀경일지도
  • 홍일화 편집위원
  • 승인 2020.10.05 15: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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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entre Pompidou_Audrey Laurans
ⓒ Centre Pompidou_Audrey Laurans

[휴먼에이드포스트] 어려서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를 부르면서 흙집을 만들며 놀곤 했다. 이 놀이는 집을 부수기 위한 놀이었지만 그 와중에 조금이라도 더 오래 버티기 위해 최대한 튼튼하게 지으려고 흙을 반복적으로 두드려가며 견고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지금이라면 두꺼비집을 지으면서 계속해서 사진을 촬영했을지도 모르지만 당시에는 스마트 휴대폰이 없어서였는지 집에 대한 미련이 없어서인지 집을 만들고 허물어트리고 또 만들기를 무한 반복하며 그 순간에 만족하며 놀았다.

이 흙장난을 티베트 종교예술인 '모래 만다라'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한순간에 소멸 될 것을 알면서 만드는 순간에 모든 공을 들이는 면에서 그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다. 며칠씩 걸려가면서 '착퍽'이라는 깔때기에 색색의 모래를 넣고 아주 조심스레 막대기로 툭툭 치면 소량의 모래가 나오면서 수많은 다양한 색상의 만다라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5-6일 정도에 걸려 만들어진 이 정교한 작품을 1시간 만에 종교의식을 하면서 사라지게 한다. 버림으로 완성되는 수행으로 만물의 일시성과 덧없음을 보여주기 위해 없앤다는데 이 제작과정을 보고 허무하게 지워져버리는 만다라를 보면 허망하기 그지없다.

만다라와 두꺼비집을 예를 들어가며 허무함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크리스토와 잔느-클로드(Christo and Jeanne-Claude)의 작품을 설명하기에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에서이다. 대지미술가 혹은 환경미술가로 불리는 부부작가는 거대한 스케일로 역사적 기념비적인 공공장소와 건물을 포장하거나 광활한 자연에 커튼을 치고 바닷길을 만드는 세계적인 대지미술가로 잘 알려져 있다.

ⓒ Centre Pompidou_Audrey Laurans
ⓒ Centre Pompidou_Audrey Laurans

광활한 자연과 거대한 건축물을 포장하는 대규모의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에 옮기는 데에는 막대한 자금과 대규모의 협상 그리고 오랜 준비기간이 필요하기에 최소 3년에서 더 길게는 10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되곤 한다. 뉴욕 센트럴파크에 오렌지색 깃발을 설치하는 데에는 무려 25년 이상을 뉴욕시와 협상하여 성사시킨 사례도 있다.

하지만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된 프로젝트는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함에도 불구하고 영구적으로 설치되지 못하고 단 2-3주 만에 철거되고 만다. 왜 크리스토와 잔느-클로드는 어마어마한 경제적 비용이 필요하고 10년이 넘는 시간이 투자된 프로젝트를 세계역사에 남을 영원한 예술작품으로 남기려고 노력하지 않고 원래상태로 되돌려 버렸을까?

크리스토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와 같이 설명을 하였다. "나의 작업은 전치(轉置)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오늘의 나조차도 정착하지 못한 사람이고 이것이 나로 하여금 지속되지 않는 예술을 만들게 한다. 나는 매우 흥분되는 작품을 제작한다. 강철, 돌, 혹은 나무와 다르게 천은 바람과 태양의 물리적인 상태를 감지한다. 작품은 새로운 것이며 재빨리 사라져버린다."

2021년 9월 18일부터 10월 3일까지 볼 수 있는 L' Arc de Triomphe Wrapped (파리 개선문 프로젝트)를 기념하는 "Christo and Jeanne-Claude Paris!" 전시가 올해 2020년 7월1일부터 10월19일까지 파리 현대미술관 퐁피두 센터(Centre Pompidou)에서 진행된다. 크리스토와 잔느 클로드에게 헌정된 이번 전시는 그 둘이 만난 1958년부터 뉴욕에 영구적으로 정착한 1964년 사이의 80여점의 작품으로 전시가 시작된다.

이어 전시는 1958년부터 1964년 동안의 파리생활을 소개하고 1975년부터 1985년까지 10년 동안 진행해온 Pont-Neuf Wrapped (뽕 네프 다리 프로젝트)의 작업에 바친 10년을 추적하며 그동안 실행한 프로젝트의 모든 단계에 대한 보고서로 드로잉 원본 및 콜라주, 모델, 사진, 아카이브 문서 등 완료된 프로젝트의 연구 및 엔지니어링 요소들이 자세하게 선보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2021년 개선문 프로젝트를 소개하며 전시는 마무리 된다.

ⓒ Petit cheval empaquete_, 1963
ⓒ Petit cheval empaquete_, 1963

운명적으로 1935년 6월13일 같은 날에 태어난 크리스토와 잔느는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해왔고 그녀는 2009년 74세의 나이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잔느와 계획했던 여러 대형 프로젝트를 홀로 진행해오던 Christo는 올해 5월31일에 잔느의 곁으로 돌아갔지만 생애 마지막 개선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Jeanne-Claude와 내가 Pont-Neuf를 포장 한 지 35년 만에 파리에서 다시 일하기 위해 참을성을 잃었다"고 말을 전했다.

그리고 두 부부작가는 그들의 예술 프로젝트가 사망 후에도 계속되기를 원했다. 개선문 프로젝트는 25,000평방미터의 재활용 가능한 청은색 폴리프로필렌 직물과 7,000미터의 빨간색 밧줄을 준비 중에 있다. 파리에서 만난 지 3년 후인 1961년에 Christo와 Jeanne-Claude는 공공 공간을 위한 임시 작품을 디자인하고 제작하기 시작했다.

Christo는 1962~63년에 포슈 가(Avenue Foch)에서 본 개선문 패키지로 포토몽타주를 만들고 2017년부터 이 프로젝트를 재개하고 개발하기 전에 콜라주를 만들었고 이 프로젝트는 거의 60년 후에야 구체화되었다.

몇날 며칠을 몇 달 때로는 몇 년을 수그리고 앉아 모래로 만다라를 그린다. 모래가 날아갈까 크게 숨도 쉬지 못하고 기침도 참아가며 온몸과 마음의 공력을 쏟아 부으며 그림을 완성해 간다. 세상을 혼자 살 수 없듯이 이 또한 여러 스님의 공동작업으로 진행된다.

인생을 100살로 보고 이로 초로 나눈 31억 개의 깨알 같은 모래알로 숨죽여가며 미술품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지우고의 반복의 행동은 생성과 소멸, 모임과 흩어짐 그리고 나타남과 사라짐으로 마무리 되어간다. 완성된 만다라는 완성과 함께 가장 화려한 모습으로 한순간에 지워져 버린다. 몇날 며칠을 몇 달의 공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다.

색즉시공 色卽是空. 세상의 모든 물질은 모두 비어있는 것이다. 사실 그저 하나의 허무한 황홀경일지 모른다.

 

글_홍일화 미술작가

여성의 미, 아름다움의 조건에 대해 회화적인 성찰을 보여준 작품을 그리고 있는 명성있는 재불작가로 현재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왕성한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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