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만난 사람] 김일진은 흔들리지 않고, 김일진의 길을 걸어간다
[기자가 만난 사람] 김일진은 흔들리지 않고, 김일진의 길을 걸어간다
  • 박희남 기자
  • 승인 2020.10.05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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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쉬 출신의 가수 김일진. ⓒ 휴먼에이드포스트 유선우 기자
허쉬 출신의 가수 김일진. ⓒ 유선우 사진기자

[휴먼에이드포스트] 대중의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 단 하루도 쉰 적이 없었던 허쉬 출신의 가수 김일진. 1999년에 데뷔해 2001년에 활동을 마무리한 김일진은 그룹 해체 이후 이듬해인 2002년, 솔로 발라드 앨범을 발표했다. 부푼 기대감을 가득 안고 준비한 앨범이었지만, 결과는 썩 좋지 못했다. 이때부터였을까. 자신감과의 지겨운 싸움이 시작됐다. 그렇게 견고했던 김일진의 세계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고민할 필요 없이 오스트리아 유학길에 올랐다. 무조건 가야했다. 숨 쉴 구멍이 하나쯤은 필요했다. 다음은 김일진씨와의 일문일답. 

 

◆ 오랜만이에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 허쉬 그룹 활동이 끝나고 2002년도에 발라드 앨범을 냈는데, 잘 되지 않았어요. 그 때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사실 저는 잘 될 줄 알았거든요.(웃음) 그야말로 폭망을 한 이후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지'라는 고민을 하다가 한 달도 안 돼서 비행기 티켓을 끊었어요. 앞뒤 따지지 않고 15일 만에, 비엔나로 떠났죠. 그곳에서는 순수 음악을 공부했어요. 그로부터 8년 후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어요. 그 사이 참 많은 것들이 변해있었어요. 음원시장이야 말할 것도 없고, 방송가 분위기도 많이 바뀌고, 적응하는데 애를 좀 먹었죠.

 

◆ 순수 음악을 공부 했다니, 의외에요.

◇ 한양대학교 작곡과를 전공했어요. 실용음악이 아닌 클래식을 먼저 접한 셈이죠. 오스트리아에서는 클래식 순수 음악 작곡을 공부했어요. 한국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는데, 저는 조금은 제 자신을 내려놓고 정말 공부만 했던 것 같아요.

자신감을 되찾고 싶었거든요. 허쉬로 활동하면서 대중가요를 불렀던 터라 이제는 순수 음악 감을 많이 잃어버렸겠구나 생각했는데, 기대도 안했던 오스트리아 비엔나국립음악대학에 합격을 했고, 이후 음악으로 할 수 있는 공부는 다 해보자라는 각오로 죽어라 공부에만 몰입했어요. 그러면서 사라졌던 자신감도 회복했죠.

 

◆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대중 앞에 서게 됐어요.

◇ 한국에 돌아와서도 몇 년간은 편곡만 했어요.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씨, 앙상블 디토 등 클래식계의 아이돌이라 불리는 분들의 곡을 편곡하고 다른 아티스트의 앨범을 프로듀서 하는 작업만 진행했어요. 사이사이에 제자들도 가르쳤는데, 제자 중 한명이 가수 이기찬씨에요.

그 친구가 제가 작사, 작곡, 편곡한 노래를 불러주었어요. 그 노래가 '조각보'라는 곡인데, 노래를 다시 만드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제가 직접 불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음악작업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연출을 해야 할 일이 생기고, 또 다방면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다시 대중 앞에 돌아오게 된 셈이에요. 정말 모든 것이 자연의 필연적인 힘처럼 저를 다시 이곳으로 오게 만들었어요.

ⓒ 휴먼에이드포스트 유선우 기자
ⓒ 유선우 사진기자

◆ 노래 부르기 vs 노래 만들기, 둘 중 더 재미있는 일을 고르자면.

◇ 고민이 필요 없는 질문 같은데.(웃음) 당연히 후자죠. 노래 만드는 일이 훨씬 재미있어요. 사실 제가 무대 공포증이 심한편이에요. 지금도 무대에 오르면 떨어요. 얼마 전에도 공연을 했는데, 엄청나게 긴장했던 기억이 나네요. 무대에 오르기로 결정하면, 온 신경이 다 공연으로 쏠려 있어 심할 경우엔 담까지 와요.

 

◆ 사실, 허쉬로 큰 사랑을 받았는데, 너무나 갑작스러운 해체였어요.

◇ 정말 짧게 활동했죠? 그런데, 그 짧은 기간 동안 정말 많은 스케줄을 소화했어요. 게다가 두 곡을 준비하느냐 저와 제 파트너 모두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어요. 큰 사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길을 걷게 된 이유는 글쎄요, 아마 음악적인 견해 차이가 아닐까 싶어요. 둘 다 작곡을 할 줄 아는데다 피아노도 칠 줄 아니, 얼마나 음악적 욕심이 컸겠어요. 오죽했으면 한 곡 녹음을 10개월 내내 할 만큼 음악적인 부분에서만큼은 완벽을 추구했던 것 같아요.

 

◆ 허쉬 노래는 지금 들어도 참 좋아요.

◇ 애인이라는 곡은 지금도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나오더라고요. 홈쇼핑에서도 나오고.(웃음) 제가 불러서가 아니고 정말 확실히 좋은 노래에요. 일단 완성도가 정말 높아 단순히 대중가요로 평가받기에는 편곡적인 부분이나 모든 부분이 좋은 노래임에 틀림없어요.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노래라고 생각해요.

 

◆ '허쉬'라는 팀명이 참 독특했죠? 초콜릿이 떠오르기도 하고.

◇ 이름을 지으면서 많은 고민을 하지는 않았어요. 외국사람들이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할 때 손을 입에 대고 '허쉬!'라고 말해요. '조용히 하고 우리 음악을 들어 주세요' 하는 의미에서 탄생된 팀명이에요. 어머니가 했던 말 중에 재미있던 말이 있었어요. 어머니가 '허쉬'라는 팀명을 듣고 '김씨만 있고, 조씨만 있는데, 왜 허쉬냐'라고 하셨던 기억이… 재미없죠?(웃음)

 

◆ 당시만 해도 굉장히 파격적인 콘셉트로 활동했어요. (허쉬는 노출, 동성애 콘셉트 등 노이즈 마케팅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러 갈 때만 해도 사실 전혀 모르고 갔어요. 이렇다 할 언급 없이 들어갔는데, 찍다 보니 영상 흐름이 그런 방향으로 간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런데 촬영장 분위기는 또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매우 경쾌하고 에너지가 넘쳤으니까. 막상 결과물이 나왔는데 왜곡되어 보이게 나오니까, 놀라긴 했죠. 저보다는 오히려 가족들이 더 놀랐어요. 그때는 동성애 콘셉트가 어필되기 보다는 일단 노출이 있으니까 '야하다'라는 인식이 더 강했던 것 같아요. 어머니 역시 영상을 보면서 '넌 배우도 아니고, 그렇다고 속옷을 선전하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무엇을 하는 거냐고' 난색을 표하셨을 정도니까요.

 

◆ 마음고생이 컸을 것 같아요.

◇ 저는 지금도 연예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음악을 하는 뮤지션이지, 연예인은 아니에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실패했다고 생각해요. 기획사에서는 허쉬를 아이돌처럼 제작하려고 했는데, 그런 부분에 있어서 입장차이가 컸고 저 스스로 괴리감이 많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에요. 음악으로 승부를 보고 싶은데, 음악보다는 노이즈 마케팅 동원해 노출과 동성애 코드로 이슈화가 되니까 솔직히 많이 힘들었어요. 그래도 회사의 노력이 있으니까, 하나의 그룹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는지 잘 아니까, 회사의 방향에 따라가기는 했는데 정말 쉽지는 않았어요.

ⓒ 휴먼에이드포스트 유선우 기자
ⓒ 유선우 사진기자

 

◆ 원조 탑골가요 출신으로서 '슈가맨', '불타는 청춘' 등 옛 추억을 소환하는 가수와 배우들의 두드러진 활약, 어떻게 생각해요?

◇ 너무 좋죠. 예술문화의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연령층이 굉장히 넓어졌다고 생각해요. 트로트가 이렇게 잘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예술문화가 일률적이지 않고, 다양해진 것에 있어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상황이 굉장히 고무적이고 즐겁게 느껴져요.

 

◆ 끝으로 김일진 씨 삶에서 음악을 정의하자면, 무엇일까요.

◇ 단순히 일로만 생각했다면 종일 붙잡고 무엇을 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어렸을 적부터 막연하게 작곡가가 되고 싶었고, 이후 음악을 공부 하면서 또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고 그렇게 계속 목적, 목적이 생겨났어요. 제겐 꿈도 목적도 모두 다 음악이에요. '음악'을 빼곤 김일진을 설명할 수 없어요. 또 음악을 제외하고는 실제로 할 줄 아는 것도 딱히 없어요.

음악밖에 모르는 재미없는 사람이 김일진이에요. 대중들은 스크린 속에서 사라지니까 공백기를 가졌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꾸준히 제 자리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음악활동을 열심히 해왔어요. 지금껏 지속적으로 음악을 해왔듯 앞으로도 할머니가 돼서도 그 연령대만이 낼 수 있는 감성으로 음악작업을 하고 싶고, 또 반드시 그렇게 할 거에요.

김일진은 편곡을 비롯해 드라마 OST, 영화 음악 등 계속 음악 작업을 진행해왔다. 오히려 허쉬로 활동했을 때보다 훨씬 더 폭넓게 음악적 역량을 선보이고 있다. 밀린 작업이 많아 마음이 바쁘다는 김일진. 그녀의 음악은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통한다. 그래서 김일진은 조금도 쉴 틈 없이 늘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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