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경의 맛있는 칼럼] 매서운 가시나무의 열매, 조그마한 열매가 뿜어내는 다부진 맛과 향
[김민경의 맛있는 칼럼] 매서운 가시나무의 열매, 조그마한 열매가 뿜어내는 다부진 맛과 향
  • 김민경 칼럼니스트
  • 승인 2020.11.02 14: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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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과일과 닮은 탱자. ⓒ 휴먼에이드포스트

[휴먼에이드포스트] 며칠 전부터 손끝이 부쩍 시리다. 사무실 책상 앞에서 보내는 하루하루가 그날이 그날 같아 몰랐건만, 계절의 변화는 머리보다 몸이 먼저 알아챈다. 냉장고 문을 여는 횟수보다 전기 주전자에 물을 끓이는 일이 더 잦아졌다. 겨울이 코앞에 온 것 같으니, 늦기 전에 겨울 준비 좀 해볼까. 그래 봐야 겨우내 마실 차를 준비하는 정도지만 몇 가지 만들어 두면 꽤 유용하다.

향긋하고 딴딴한 모과를 잘게 썰어 설탕에 켜켜이 잰다. 모과는 하도 야물어서 3~4개만 손질해도 손목이 얼얼하다. 채를 썰어도 좋고, 납작납작 나박썰기도 좋다. 모과에 모과만큼의 설탕을 넣고 살살 버무려 병에 담아 둔다. 모과는 수분이 적은 과일이라 설탕이 녹기까지 꽤 시간이 걸린다. 설탕이 완전히 녹은 다음에도 모과 맛이 우러나도록 열흘만 더 참자. 향기롭고도 달콤한 모과차를 물에 넣고 팔팔 끓여 먹으면 은은하고 뜨끈한 온기가 몸을 채운다.

지금 시장에 가보면 울룩불룩 튼실한 생강이 많이 나온다. 생강을 잔뜩 사다가 껍질을 벗겨 한 무리는 설렁탕 집 깍두기만큼 큼직하게 썰어 냉동실에 넣어 두고, 다른 한 무리는 잘게 썰어 꿀을 부어 둔다. 꿀을 부어 둔 생강은 2주 정도 지나서부터 차로 마시면 된다. 얼려 둔 생강은 남은 과일이나 마른 과일, 다른 차와 섞어 보글보글 끓여 겨우내 마시면 겨우내 콧물, 기침과 가까이 지낼 일이 없다.

탱자는 크기에 비해 씨가 굉장히 많다. ⓒ 휴먼에이드포스트
탱자는 크기에 비해 씨가 굉장히 많다. ⓒ 휴먼에이드포스트

지금까지는 겨울차라면 모과, 생강 요렇게 두 가지만 만들고 손을 털었는데 작년 이맘때 탱자를 만나고부터는 일이 하나 늘었다. 탱자라는 이름은 대체로 알지만 별로 접한 적 없는 과일일 테다. 탱자라는 이름으로 짐작하니 유자와 가까운 사이인 것 같고, 색은 귤과 비슷하며, 살구처럼 보드라운 털로 덮여있다. 마치 금귤(낑깡)처럼 동그랗고 꼭지가 작은데 쥐어보면 과육이 꽤 단단하다. 코를 대니 탱자 특유의 향이 아주 진하게 퍼지는데 향내로 치면 유자나 귤은 비교도 안 되겠다. 잘 익은 모과처럼 농후하지만 산뜻하고 새금하다.

따뜻한 지역에서 잘 자라는 탱자는 봄 끝자락에 흰 꽃이 핀다. 6월부터 작은 초록색 열매를 맺고 10월이 되면 노랗게 익는다. 탱자는 잘 익혀 과일로 먹기보다는 초록색일 때 수확하여 약재로 사용되곤 한다. 수확 시기에 따라 '지실', '지각'으로 불리는데 주로 말려서 유통된다. 잘 알려진 약효로는 피부 가려움증을 진정시키고, 더부룩한 속 혹은 체한 속을 가라앉힌다는 것이다. 이 외에 피로 해소, 눈 건강, 혈관 건강, 장 건강 등에도 좋다고도 한다. 특히, 아토피 질환이나 피부 건조함으로 고생하는 이들이 탱자를 많이 찾는다고 한다. 탱자즙을 꾸준히 마시고, 탱자즙과 물을 섞어 몸을 헹구거나 피부에 바르면 가려움증이 쉬이 가라앉는다.

손쉽게 만들 수 있는 탱자청. ⓒ 휴먼에이드포스트
손쉽게 만들 수 있는 탱자청. ⓒ 휴먼에이드포스트

쓸모가 많은 탱자이지만 정작 나무에서 노랗게 잘 익고 나면 오히려 쓸모가 줄어든단다. 도저히 그냥 먹기는 힘든 맛이라 그렇다. 탱자는 먹을 과육이 거의 없는데 굵직한 씨까지 가득 들어차 있다. 당연히 즙이 적고, 맛이 떫고 쓰며 시다. 그럼에도 요리조리 살펴볼수록 유자나 모과만큼의 역할은 하겠다 싶다. 타고난 향기로움과 신맛이 독특하면서도 부드러운 편이고, 썰어 놓으니 앙증맞은 단면이 아주 예쁘다. 게다가 작은 양이지만 즙을 얻을 수 있으며, 보송보송한 겉껍질은 잘게 썰면 '제스트(zest)'로 활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 몸에 이로운 점이 가득한 과일인데 먹을 방법이 왜 없을까.

탱자를 과일답게 활용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역시 청을 만드는 것이다. 탱자의 단면을 살려 동글동글 얇게 썰어 설탕과 켜켜이 쌓는다. 씨는 너무 굵고 크며, 쓴맛이 우러날 수 있으니 빼면 좋다. 탱자에서 나오는 수분이 적기 때문에 설탕을 과육 양보다 조금 더 넣거나 꿀을 섞어 재우면 된다. 탱자 맛을 빨리 우려내고 싶다면 설탕, 꿀, 탱자를 큰 그릇에 넣고 수분이 나오도록 섞어서 병에 보관한다. 청은 담근 지 일주일 뒤부터 바로 먹어도 좋지만 한 달 정도 숙성하면 한결 진한 풍미를 즐길 수 있다. 따뜻한 차로, 차가운 음료로, 음식의 양념으로 두루 사용할 수 있다.

싱싱한 탱자는 소스나 드레싱을 만들 때 활용할 수 있다. 도톰하게 썰어 씨를 뺀 탱자를 녹인 버터에 뭉근하게 볶아 충분히 향을 낸다.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여 구운 생선이나 고기에 뜨겁게 끼얹어 먹는다. 욕심을 내어 핑크 솔트를 몇 알 구해 통째로 뿌리거나 아스파라거스나 브로콜리처럼 담담한 맛을 내는 채소를 곁들이면 잘 어울린다.

기름에 마늘이나 대파를 볶아 향을 내듯 탱자 역시 기름에 볶으면 톡 쏘는 향이 그대로 우러나니 취향껏 요리에 사용해볼 곳이 많아 보인다. 탱자의 겉껍질은 얇게 도려내어 잘게 썰면 오렌지나 레몬껍질처럼 '제스트(zest)'로 요리에 활용할 수 있다. 탱자 제스트와 즙을 오일에 섞어 새콤하며 향긋한 드레싱을 만들면 된다. 단, 탱자 껍질과 즙은 레몬이나 라임보다 떫은맛이 있으니 신맛 전체를 탱자로 내기보다는 독특한 향을 더하는 정도로 사용하면 좋다.

오븐에 말리듯 구운 탱자. ⓒ 휴먼에이드포스트
오븐에 말리듯 구운 탱자. ⓒ 휴먼에이드포스트

오븐에 구운 탱자의 쓸모도 참으로 다양하다. 둥근 모양을 살려 얇게 썬 탱자를 섭씨 100~110도 정도로 예열한 오븐에 펼쳐 넣고 20~30분 가량 굽는다. 건조기에 말려도 되고, 채반에 널어 바람에 오래 말려도 되지만 오븐에 구웠을 때 달콤한 향이 더 진하게 난다. 구운 탱자를 컵에 한두 장 담고 따뜻한 물을 부어 잠시 우린다. 신맛과 쌉싸래한 맛이 은은하게 우러난 향기로운 차는 탱자 그대로 참맛을 그대로 보여준다. 카페에서 흔히 맛보는 레몬수보다 훨씬 품위 있다. 구운 탱자를 피클이나 장아찌를 만들 때 몇 쪽 넣으면 고운 향이 채소에 골고루 밴다. 먹을 때 그릇에 채소와 함께 담아내면 모양도 예쁘다.

탱자향 버터와 연어구이. ⓒ 휴먼에이드포스트
탱자향 버터와 연어구이. ⓒ 휴먼에이드포스트

우리나라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탱자나무가 여럿 있다. 그중에는 수령이 400년 가까이 된 것도 있다. 탱자나무 줄기에는 장미와 엄나무가 겁을 먹을 만큼 뾰족하며 커다란 가시가 줄지어 나 있다. 희고 여린 꽃, 노랗고 탐스러운 과일과 상반된 나뭇가지 모양 덕에 탱자나무는 예로부터 울타리 대용으로 많이 심어졌다.

오랫동안 주변에 있었음에도 탱자는 과일로써는 사랑받지 못했다. 우연한 기회에, 이런저런 방법으로 먹어 본 탱자는 개성이 넘치고 찬란하도록 매력적인 과일이다. 싱싱한 것을 바짝 말려 약용으로만 쓰기에는 아까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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