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사해요" 유영호 작가의 작품세계
"우리, 인사해요" 유영호 작가의 작품세계
  • 박희남 기자
  • 승인 2020.11.04 17: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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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한 인사로, 마음과 마음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그리팅맨'의 작가
유영호 작가 조각상 그리팅맨. ⓒ 연천군청
유영호 작가 조각상 '그리팅맨'. ⓒ 연천군청

[휴먼에이드포스트] 무게가 3t에 가까운 6m 거대 조각상이 고개 숙인 채 인사를 건넨다. 먼저 건네는 인사 한마디가 때론 큰 반가움으로 다가온다. 일명 '인사하는 사람'으로 익숙한 '그리팅맨' 조각상 작품을 만든 유영호 작가는 인사가 갖는 의미와 가치를 높이 치켜세운다. 인사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처음 하는 행위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경의를 표현하며, 서로에 대한 신뢰감과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한다. 결국 인사는 모든 관계의 시작과 끝을 결정하는 셈이다.

한국식 인사
그리팅맨이 건네는 인사는 한국식 인사에 가깝다. 서양에서는 주로 인사의 제스처로 악수를 청한다. 악수는 상대방에게 손에 무기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의미로, 처음 만난 사람의 적대감을 누그러뜨린다. 유영호 작가 조각상 그리팅맨은 악수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친근함에 존경심과 겸손을 더한 것이다. 이는 한국에서 주로 하는 맞절, 큰절 인사 방식에서 영감을 얻었다.
유영호 작가는 2000년 독일 유학 당시 한국인으로서 자신의 위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시간이 있었다. 그러던 중 한국의 전통적인 인사방법인 큰 절하는 모습을 비디오 작품으로 만든 적이 있는데, 우연히 영상 전시를 보게 된 네덜란드의 작가 헨크 비스가 인사 행위에 관심을 보이면서 이때부터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가장 강력하고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인사의 보편성을 확신하게 됐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각도 15°
15°. 그리팅맨은 자존감은 지키면서 상대방도 존중하는 각로도 15°를 택했다. 너무 자세를 낮추는 것은 오히려 가식적으로 보일 수 있으며 비굴해 보일 수도 있다. 또 정치적 행위로도 인식될 수 있어 여러 시행착오 끝에 15° 각도 인사를 구현해 냈다.
자신을 낮추면서까지 상대를 높이는 사람을 외면하고 돌아서는 이는 드물다. 그래서 인지 몸집이 아주 큰 거인은 그리팅맨의 공손한 인사에 모두들 마주보고 인사를 건넨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것이 있다. 그게 바로 인사다.
한국식 인사를 알고 모르고는 중요하지 않다. 한국식 인사를 알지 못하는 외국인들도 그리팅맨을 마주하면 덩달아 함께 15° 각도 인사를 하고 있을 테니까.

유영호 작가 조각상 그리팅맨. ⓒ 연천군청
유영호 작가 조각상 그리팅맨. ⓒ 연천군청

북녘 땅이 보이는 곳에서
유영호 작가는 자비를 들여 그리팅맨 해외 제작, 운반을 설치하고 있다. 지구촌 세상 곳곳에 거대 그리팅맨들이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아무 곳이나 설치하지는 않는다. 유영호 작가만의 확고한 기준, 철학은 있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에만 그리팅맨을 설치할 수 있다.
일단 국내는 서울, 제주, 연천, 양구에 그리팅맨들이 인사를 하고 있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연천은 유영호 작가에게 있어 조금 더 마음이 쓰이는 곳이다.
민간인이 갈 수 있는 최북단 지역인 연천 옥녀봉의 그리팅맨은 평화와 화해의 특별한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남은 분단국가의 철조망 앞에서 북녘을 향해 15° 각도로 인사를 하는 10m 그리팅맨의 거대 조각상은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묵직한 감동을 전한다. 작가의 바람처럼 언젠간 북한에도 그리팅맨이 설치 돼 남과 북이 서로 마주보고 인사하기를.

글로벌 그리팅맨 프로젝트
해외에서도 그리팅맨의 활약은 계속된다. '대한민국 광장'으로 이름을 바꾸게 한 우루과이 몬테비데오를 포함해 파나마 파나마시티, 에콰도르 카얌베와 과야킬, 브라질 한국문화원, 미국 뉴저지에 설치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 설치된 그리팅맨은 라디오 생방송에서 찬반 토론이 이루어질 만큼 논란이 있기도 했지만, 막상 설치 후에는 호평을 받으며 도시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부상했다.
현재 멕시코 메리다, 터키 이스탄불,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키리바시 타라와 등에 그리팅맨을 설치하는 작업을 계속 진행 중이다.

정중한 인사로, 마음과 마음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그리팅맨. 이 작품을 설치한 유영호 작가를 지난 9월 12일~27일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ACEP2020 한국특별전'에서 만났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후배 예술가들에 대한 진한 애정이 담겼다.  

유영호 작가가 휴먼에이드포스트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휴먼에이드포스트
유영호 작가가 휴먼에이드포스트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유선우 사진기자

"언제나 괜찮아, 지금처럼 그렇게 그림을 그려"

◆ 'ACEP 2020 발달장애 아티스트 한국특별전'에 대한 감상평 부탁드립니다.
◇ 발달장애 작가들의 작품을 이렇게 많이 본 적은 처음입니다. 놀라울 따름입니다. 제게도 발달장애 사촌동생을 둔 지인이 있습니다. 그 친구 역시 그림을 굉장히 좋아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그림 그리는 일에 몰두합니다. 그 친구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림이 발달장애 작가들한테, 큰 힘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마음에 위안을 주는 치유의 매개체로서 그림이 좋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됐습니다.
아울러 발달장애 작가들을 비롯해, 발달장애인들은 하루 종일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느라 다른 일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데, 이럴 때 부모님 또는 주변의 사람들이 특색을 잘 파악해 발달장애인들이 좋아하는 일을 조금 더 소중하게 여겨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듭니다. 

◆ 오늘 전시회 그림 중 유독 마음을 움직인 작품이 있었나요.
◇ 가장 어린친구가 그린 자동차 그림이 기억에 남습니다. 얼핏 보면 어두운 색감으로 인해 굉장히 우울한 느낌의 그림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저는 훈련받은 그림들보다 자기 나름대로의 선들이 거침없이 잘 나오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몇몇 그림은 미술이라는 교육시설에 맞추기 위해 반복적으로 훈련한 듯한 느낌을 엿볼 수 있었는데, 그림은 고급스럽고 세련돼 보일지 몰라도, 본인들을 표출하는데 있어서는 아쉽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9살짜리 친구의 그림이 좋게 보였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아직 그 친구의 그림에는 울타리가 없으니까요. 자신이 그리고 싶은 대로, 원하는 색감으로 연출할 수 있을 테니까요. 앞으로도 기대가 큽니다.
한 가지 더 인상적이었던 점은 외국 발달장애 작가 작품들과 한국 발달장애 작가 작품들의 분위기나 결이 확연히 다르다는 느낌이었습니다. 

◆ 장애를 구분하지 않고, 작가님의 시선으로 바라봤을 때 이번 전시회는 어땠나요.
◇ 발달장애를 인지하지 않고 작품들을 비장애인이 감상했을 때 몇몇 작품들은 상당히 수준이 높고 훌륭한 그림이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그림들이 있었습니다.
장애와 상관없이 그림이라는 게 표현이 될 수도 있고, 소통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미술 작가들이 늘 이야기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언어와 상관없이 소통하는 것입니다. 미술은 언어에 구애받지 않고 사람과 작품 사이에 소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늘 전시된 많은 작품들이 굉장히 수준이 높았습니다.
발달장애 작가들이 그림을 통해 자신을 표현해 나가는 방법들을 찾아가고 있고, 어느 부분은 그 방법들을 슬기롭고 현명하게 잘 찾은 것 같아 매우 희망적으로 생각합니다.  

◆ 선배 예술가로서 발달장애인들을 향한 응원의 메시지.
◇ 오히려 발달장애 작가들이 제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줍니다. 저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줄 만큼 희망적인 사람은 아닙니다. 오늘 작품들을 보면서 '아, 그래도 내가 명색이 어디 가서 직업이 뭡니까 물어보면 작가라고 하는 사람인데, 오늘 작품을 보니 내가 많이 분발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한 번 배우고 갑니다. 그림은 삶의 중요한 파트너가 될 수 있고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회가 된다면 여러분도 더 많이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도구로서 그림을 열심히 그려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다보면, 여러분들의 마음도 치유해 가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좋아하는 건 시간이 지난다고 흐려지는 게 아닙니다. 그림으로 나를 표현할 수 있다는 일이 얼마나 큰 축복일까요. 이리 큰 축복을 누릴 수 있으니, 여러분은 참 황홀하겠습니다.
마음을 켜고 바라보면 여러분의 그림이 지금보다 더 섬세해 보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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