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
  • 박재아 편집위원
  • 승인 2020.11.06 15: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인도네시아 관광부
인도네시아 음식 © 인도네시아 관광부

[휴먼에이드포스트] 이혼 후 20년째 혼자 지내시는 아버지는 하루 거의 두 끼를 라면으로 때우신다. 고혈압에 당뇨도 있으니 라면 좀 그만 드시라고 잔소리도 하고 화도 내 보지만 들은 체도 안 하신다. 돈이 없어서, 밥해 먹기 귀찮아서가 아니라 라면이 너무 맛있다고 하신다.

생각해보면, 가격 대비 라면만큼 훌륭한 끼니가 되는 음식도 드물다. 삼각김밥도 그것 하나만 먹기엔 왠지 허전하고 목이 멘다. 바쁠 때 어쩔 수 없이 삼각김밥으로 허기를 달랠 때는 정말 ‘때운다’라는 생각이 들어 서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라면은 한 그릇으로 충분히 식사가 된다.

아버지 몰래 라면 예찬

조리하는데 10분이 채 걸리지 않으니 한참 허기질 때 서둘러 한 냄비 끓여 뜨끈하고 쫀득한 면발을 입에 휘몰아 넣는 '첫 젓가락질'. 이는 경제학의 '한계효용의 법칙'을 굳이 빌자면, 인간에게 '최고의 만족'을 주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탄수화물 덩어리인 면을 튀겼으니 엄청난 열량이 담긴 면을 칼칼한 국물과 함께 먹으니 속도 든든하다. 스트레스 받을 때 라면 한 사발하면 얼큰한 맛이 기분전환도 해주어 행복한 감정마저 든다. 

한국인에게 라면은 떡볶이와 함께 소울푸드 1~2위를 다툰다. 물론 아버지가 거의 매끼 라면을 드시는 건 너무 싫지만, '제일 맛있다'는 말씀은 뭔지 알겠다. 특히 평생 공장일을 하시며 빨리, 그리고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었던 고마운 음식이었을 테니 의리를 져버리기 쉽지 않으실 것도 같다.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세상을 살게 된 지 불과 몇십 년 밖에 안 된 한국의 어른들에게 라면은 단지 배를 채우는 목적만이 아닌, 뭔가 짠한 의미를 가진 음식이다.

세상에서 가장 라면을 많이 먹는 한국인

아니나 다를까. 1인당 라면 소비량 통계를 보니, 우리나라가 부동의 1위다.

2018년 한 해 동안 한 사람당 74.6개를 먹었다고 한다. 2015년 통계에는 76개였는데 많이 줄었다.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대체식품이 많아지고, 건강에 대한 의식도 달라졌기 때문이리라. 그래도 이 정도면 전 국민이 일주일에 5일 동안 매일 한 개씩 라면을 먹는 셈이다.

구매량을 따져보니 2018년 한 해 동안 한국에서 38억 2천만 봉지가 팔렸다. 세계 8위다. 구매량은 당연히 인구수에 비례한다. 인구도 많지만 면 요리를 즐겨먹는 중화권이 단연 압도적인 소비량을 보인다.

세계인스턴트라면협회(WINA)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라면 판매량은 약 1천36억개로, 이 가운데 무려 402억 5000만개(38.9%)가 중국(홍콩 포함)에서 팔린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연간 1인당 라면 소비량에 있어서는 중국이 아닌 우리가 1위가 아니다. 한국인에 이어 베트남(53.9개)과 네팔(53.0개)이 각각 2, 3위를 차지했다.

수입라면은 그저 '맛보기용'

대형마트에 가면 수입라면 종류가 상당히 많다. 맛이 궁금해서 한 번 먹어보려고 몇 번 구매했는데, 익숙한 맛이 아니라 손이 잘 안 간다. 우리 집만 해도 유통기한이 지난 수입라면이 그대로 있다.

우리나라 라면이 워낙 맛있어서 그런지, 수입라면 시장이 그리 크지 않은 것인지, 통계를 좀 찾아보려고 검색을 해봤지만, “우리나라 라면이 해외에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라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한국대표 라면
한국대표라면 © 인도네시아 관광부

한국라면 '내가 제일 잘나가'

대표적인 'K푸드' 제품인 라면 수출이 지난 4년간 세 배가량 늘어났다. 중국, 미국, 동남아시아가 대표적인 수입처다. 관세청 수출입 무역통계에 따르면 라면 수출은 중량 기준으로 2015년 5만 5378t에서 해마다 늘어 지난해 13만 7284t을 기록했다. 

4년 새 2.7배 성장한 셈이다. 수출액은 같은 기간 2억 1879만 달러에서 4억 6699만 달러(약 5536억 원)로 두 배 증가했다. 한국라면이 가장 많이 팔린 국가는 중국이다. 지난해 중국 수출량은 4만 1537t으로, 전체 수출량의 30%를 차지했다.

이어 미국(1만 4908t), 일본(9638t), 호주(6147t) 순이다. 동남아에서는 인도네시아(5988t)가 한국라면을 가장 많이 수입했다. 베트남(5669t), 태국(5170t), 필리핀(4251t), 말레이시아(4222t) 등이 뒤를 이었다.

인도네시아라면, 얼마나 맛 없길래?

중국 못지않게 인도네시아도 라면을 많이 먹기로 유명한 나라다. 세계 4위 인구를 가진 인도네시아의 인스턴트 면 시장은 중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다. 

인도네시아 사람들도 주식으로 쌀이나 면을 많이 먹는다. 입맛도 우리와 비슷하다. 매콤 짭짤한 맛을 좋아해 한국라면이 제일 인기가 좋다. 매운맛으로 유명한 불닭볶음면 ‘먹방 챌린지’ 열풍이 불기도 했다. 한국라면은 현지 브랜드 라면보다도 유통 가격이 5배 이상 높지만 최근 5년간 인도네시아의 한국라면 수입 실적은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본격적으로 한류열풍이 불기 시작한 2016년부터 한국산 라면 수입 규모는 전년 대비 3배 이상 증가해, 인도네시아 라면 전체 수입 시장 규모 증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2018년에도 한국라면은 인도네시아라면 수입 시장에서 1위를 차지했다. 전체 수입 시장에서 한국라면이 차지하는 비중은 84.72%로 압도적이다. 2018년에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먹은 한국라면은 124억 4천만 인분이다. 이는 무려 31조 2,801억 루피아(21억 7,087만 달러) 규모다. 참고로 인도네시아의 인구는 2억 6천여만 명(2019년)이다. 2045년에는 3억 1천9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인도네시아 통계청은 추정했다. 무슬림이 절대 다수인 나라라 인구증가율은 1%를 상회한다.

해외문화홍보원에서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한국을 가장 좋아하는 민족 1위'로 손꼽힐 만큼 인도네시아의 한류 사랑도 대단해, 한국라면 수요는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다.

관계자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라면 수요가 더 늘어나 수출 증가세를 꾸준히 유지할 수 있을 전망이라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 '미고랭' © 인도네시아 관광부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 © 인도네시아 관광부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은?

그나저나 인도네시아라면이 얼마나 맛이 없길래 한국라면에 이리도 열광하는 걸까? 과연 한국 라면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일까? 평가자의 입맛에 크게 좌우하기 때문에 순위 만으로 판가름하기는 어렵지만, 인구가 가장 많은 1~4위 나라에 이렇게 많은 양의 한국라면이 수출되고 있다면 "한국라면이 세계인의 입맛을 잡았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니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은 한국라면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라면을 가장 많이 사 가는 나라 중 하나인 인도네시아의 인도미(Indomie) 미고랭 바비큐 치킨이 1위를 차지했다.

사람의 입맛은 오랫동안 길들여진 ‘성격’과 비슷해 아무리 많은 미식가들이 그렇게 평가했다고 해서 인도네시아라면이 내 입맛에도 가장 맛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맛있는 '근거'는 궁금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맛있다'고 평가하는 맛을 담았기 때문에 그 쟁쟁한 라면들을 제치고 1위로 뽑혔을 테니.

가장 맛있는 라면 1위, 어떻게 뽑혔나?

순위를 매긴 사람은 LA 타임스의 인기 푸드 칼럼니스트인 루카스 관 피터슨(Lucas Kwan Peterson)이다.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인스턴트 라면 31개를 선정해 순위를 공개했다. 기준은 맛과 진정성(Truth)이다. 예를 들어, 치킨 라면에서는 정말 치킨 맛이 나는지, 새우라면은 얼마나 새우의 맛을 잘 살렸는지를 본다.

"광고대로 정말 '그 맛'이 나는지"가 평가 기준이다. 완전히 개인적인 입맛에 따라 정한 순위는 아니라 신뢰가 가지만, 특정한 맛(flavor)을 가진 라면이 주요 대상이라 모든 라면을 포괄한다고는 볼 수 없다.

아쉽게 1위는 놓쳤지만 우리나라 라면인 신라면, 불닭 볶음면, 꽃게짬뽕 등이 10위 안에 들었다. 1위를 차지한 인도네시아의 인도미 미고랭 바비큐 치킨 라면 (Indomie Instant Fried Noodles BBQ Chicken)은 과연 얼마나 '진정성'을 가진 맛일까?

세계 라면맛 순위표 © 인도네시아 관광부
세계 라면맛 순위표 © 인도네시아 관광부

안하다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와 한국의 외교, 경제 관계가 돈독해지고 있다는 뉴스를 자주 접한다. 하지만 우리는 인도네시아 문화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섬이 1만 8천개가 넘는 나라인데도 발리, 자카르타 외의 지명들은 이름도 생소하다. 나시고랭, 미고랭, 사떼가 인도네시아 음식이란 건 들어봤지만, 베트남 쌀국수나 태국의 톰양꿍에 비하면 멀게 느껴지는 음식들이다.

얼마든지 인도네시아산 라면, 과자를 쉽게 구할 수 있었는데도, LA타임스의 기사를 읽지 않았다면 먹어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 같다. 라면은 원래 국물이 있어야 제맛이라는 편견 때문에, 한국산 라면이 이렇게 맛있고 잘나가는데 왜 수입라면을 굳이 먹느냐는 자부심 때문이었던 같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우리나라와 한국 문화를 그렇게 좋아한다는데 그들의 문화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둔감했다. 미안한 마음마저든다. 참고로 나시는 '밥', 미는 '면'이며 고랭은 '볶음'이라는 뜻이다.

박재아_주한 태평양 관광기구(SPTO) 대표
박재아_주한 태평양 관광기구(SPTO) 대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