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만난 사람] 주인공 '에르나니'의 심정을 상상하며 무대에 오르는 테너 국윤종
[기자가 만난 사람] 주인공 '에르나니'의 심정을 상상하며 무대에 오르는 테너 국윤종
  • 송창진 기자
  • 승인 2020.11.15 04: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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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악가란 기본에 충실하며 묵묵히 성장하게 해주는 매력적인 직업"
도전을 멈추지 않는 성악가 국윤종. ⓒ 유선우 사진기자
도전을 멈추지 않는 성악가 국윤종. ⓒ 유선우 사진기자

[휴먼에이드포스트] 지난 11월10일 서초동 라벨라오페라단 사무실에서 오페라 <에르나니>의 주인공을 맡은 국윤종 성악가를 만나 인터뷰했어요.  
<에르나니>는 이탈리아의 작곡가 베르디가 작곡한 비극 오페라로, 프랑스 극작가 빅토르 위고의 희곡이 원작이에요. 
이 오페라는 스페인 아라곤의 영주였으나 반역죄로 추방당해 국왕 카를로에게 반기를 든 '에르나니'와 지체 높은 귀족이자 엘비라의 정략결혼 상대인 '실바', 그리고 국왕 '카를로' 이렇게 세 남자가 아름다운 여인 '엘비라'를 놓고 벌이는 사랑과 갈등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다음은 국윤종 성악가와 나눈 인터뷰 내용이에요. 

◆ 비극의 주인공 '에르나니' 역을 맡으신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 일단 너무나 감사하고 기쁩니다. 새 작품이 주어진다는 것은 언제나 흥분되고 조심스러운데요. 특히, 에르나니 역할은 인생에 있어서 꼭 한 번씩 경험하는 일들의 극적인 캐릭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계획하고 있던 일들이 뜻대로 되지 않고 도리어 큰 화를 불러오는 상황도 종종 일어납니다. 운명적인 순간에 힘든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들이 섬세하게 담겨있는 작품입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수 있는 스토리라고 감히 짐작해 봅니다. 세상에 유한한 가치에 너무 많은 시간과 소중한 것들을 소비하고 낭비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 번쯤 뒤돌아보게 하는 교훈을 주는 역할에 소중함을 느낍니다. 


◆ <에르나니> 공연을 준비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 먼저, 물질적 공급이 부족한 점을 들 수 있겠습니다. 힘든 상황에 단장님으로부터 모든 스태프가 허리띠를 조여메고 집중했습니다. 하지만 '헝그리 정신'이라고 할까요. 오기도 생기고 열정도 평소보다 배나 더 생기는 극적 효과가 있었습니다.(웃음)

 

◆ 뒤늦게 성악을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악가의 길을 걷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 저는 사실 광운대학교 컴퓨터공학과를 나온 공학도입니다. 군대를 다녀와서 만 25세에 성악을 시작했어요. 성악을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를 말씀드리자면, 교회에서 찬양 리더를 하다가 찬양 선교사가 되기 위해 여러 악기를 공부했어요. 그러던 중, 지인 한 분이 성악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권유해서 취미로 성악을 접했어요. 그렇게 시작한 성악이 이 자리까지 오게 됐네요. 


◆ 성악가의 삶은 어떤가요? 성악가라는 직업의 매력이 궁금합니다.

◇ 성악은 주로 클래식을 다루는데요. 클래식은 말 그대로 '고전적인'이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성악은 요즘같이 새로운 것들이 개발되고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세상에서 우리가 고전적인 기본을 지키고, 그 기본 틀에 충실할 때 어떤 기쁨이 있는지, 또 흔들리지 않는 기준에 대한 사명감을 알게 해주는, 고리타분하면서도 매력적인 분야라고 생각해요. 
특히 성악에서는 자신의 목소리 자체가 악기이기 때문에 성악가는 이 악기를 잘 관리하면서 인문학과 신앙적인 면 등 다방면에서 계속 성장시켜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그루의 나무가 잘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 뿌리가 한자리에 깊숙이 박혀 있어야 하듯이, 성악도 한자리에서 꾸준히, 어떠한 시련에도 그 자리를 지켜나가면서 잎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과정들을 묵묵히 이어가게 해주는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악이란 기본에 충실한 분야라고 말하는 국윤종 씨예요. ⓒ 송창진 기자

◆ 평소 성악가님이 즐기는 취미가 무엇인가요? 

◇ 저는 탁구나 당구처럼 공을 가지고 하는 운동을 좋아해요. 그리고 취미가 자연스레 일과 연결되기도 해요. 1년에 여러 작품들을 공연하다 보니까 그 작품들의 원전(기준이 되는 본디의 고전) 문학들을 접하고 읽는 것들이 자연스럽게 취미가 되었어요. 사실 약간의 직업병처럼 의무감으로 다가갈 때도 있지만, 어느새 나도 모르게 그 문학에 빠져서 심도 있게 공상을 하거나 상상하게 돼요. 제 취미는 상상하기, 공상하기, 쉬운 말로 ‘멍 때리기’가 되겠네요.(웃음) 

 
◆ 성악가는 목 관리와 컨디션 조절이 생명이라고 들었습니다. 목 관리나 컨디션 조절은 어떻게 하시나요? 

◇ 목 관리는 호흡이 주가 됩니다. 목을 많이 쓰기 위해서는 어떻게 성대를 통해 호흡을 잘 지나가게 하느냐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려면 기본적으로 '말하기 습관'부터 신경을 씁니다. 일반적으로 말을 할 때는 단어 하나하나를 끊어서 이야기하지만, 노래는 끊어지는 말들을 길게 이어서 음악으로 표현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말을 빨리 하려고 하지 않고, 천천히 흐를 수 있도록 합니다. 또한 운동도 좋은 목 관리법입니다. 호흡을 위한 코어 운동과 신앙을 통한 정신적 운동을 통해 정신을 맑고 건강하게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오페라뿐만 아니라 오라토리오 등에서도 활동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 저의 최종 목표는 현 시대에 맞는 창작극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음악을 하는 것입니다. 특히, ‘뮤직 바이블’이라는 것을 준비하고 있는데요. 성경의 내용과 우리나라 역사를 접목시켜 다음 세대들에게 좋은 영감을 주는 창작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어요. 창작을 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입니다. 오페라 한 가지만 잘하기보다는 오라토리오, 리트(독일 가곡), 바로크 음악 등 여러 장르의 곡을 통해 배우고 느끼고 경험할 때 창조성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성악가라는 직업의 수명은 긴 편이 아니에요. 제 건강이 허락할 때만 노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여러 다양한 음악들과 세계를 접했을 때 하느님이 창조하신 놀라운 영광들을 영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요. 이것들이 다음 세대에까지 기록으로 전해져 대한민국이 훌륭한 문화 강대국이 되도록, 그런 나라의 국민으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 지금까지 해온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하나 알려주세요.

◇ 많은 작품들이 기억에 남지만, 이번 11월에 공연될 오페라 <에르나니>는 잊지 못할 공연이 될 것 같습니다. ‘코로나시대’라는 말처럼 정말 다들 어려워하는 시기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벨라오페라단에서 이 공연을 위해 많은 것들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난항을 겪으면서도 이 작품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큰 기쁨을 느꼈고, 음악가로서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전달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 오페라의 대중화를 위해 해설이 있는 오페라나 지속적인 청소년 음악회 진행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활동에 관심이 있으신지, 오페라의 대중화를 위한 첫걸음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외국에서 활동하면서 느낀 것 중에 하나가 문화라는 것은 공유되어야 할 부분, 지켜져야 할 부분, 또 연구되고 발전시켜야 하는 부분들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라벨라오페라단이 그 역할을 잘해내고 있어요. 하지만 오페라는 사실 외국 대문호들의 원작을 배경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문학에 관심이 없는 청중들이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작품들이 많습니다. 
오페라가 대중화되기 위해서는 청중들의 학습이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학습은 대중매체로 충분히 전달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요즘 오디션 프로들이 많습니다. 방송마다 오디션 메이킹 작업과정들을 보여주고, 단계별 갈등도 비춰주잖아요. 이처럼 오페라 오디션 프로그램도 생겨서 오페라의 배경부터 성악가들이 오페라를 준비하는 과정, 작품 제작과정, 그리고 하나의 곡을 완성하면서 생겨나는 갈등과 노력까지 대중에게 보인다면 ‘어 오페라도 재밌는 장르구나’라는 생각을 심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 트로트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서 매니아층이 형성된 것처럼요. 


◆ 해외에서 많은 오페라에 출연했고 국내 오페라에도 출연하고 있는데요. 국내 오페라가 글로벌 시장으로 나아가기 위해 어떤 준비가 더 필요할까요?

◇ 국제시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다 준비됐다고 생각합니다. 전 세계 극장에서 주역으로 일하고 있는 국위 선양 성악가들이 각 극장마다 평균 2~3명은 될 거라고 생각해요. 단적인 예로, 세계 유수의 콩쿠르에서 한국인들이 1등을 안 한 곳이 없습니다. 성악계에서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1~2등은 벌써 수십 명이 배출되었어요. 콩쿠르에서 너무 많이 입상하다 보니까 당연하게 여겨지고, 이슈화되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많은 국민이 오페라에 대해 잘 모르는 것도 참 안타까운 현실이죠. 
클래식 오페라는 우리 전통문화가 아니라 소비성 문화나 사치성 문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원사업에 대해 적극적이지 못한 부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즉, 이런 좋은 작품들이 공연 될 수 있도록 국가적, 기업적 후원이 뒷받침된다면 오페라의 대중화는 물론 우리 성악가들이 국제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질 수 있을 것 같네요. 


◆ 많은 작품을 통해서 필모그래피를 쌓아오셨는데요. 꼭 도전해보고 싶은 작품이나 역할이 있으신가요?

◇ 내년에 국립오페라단에서 푸치니의 <서부의 아가씨>와 오펜바흐의 <호프만 이야기>에서 주역으로 캐스팅되었습니다. 그 두 작품에 대해 다시 깊이 있게 공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인생에서 도전해보고 싶은 작품은 아무래도 바그너의 작품들이죠. 특히 한국인 테너로서 바그너 작품의 주역 가수에 도전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역량을 더 키우고 공부도 열심히 해서 언젠가 한 번쯤은 바그너 작품에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라벨라오페라단에서 준비한 베르디의 오페라 '에르나니' 포스터예요. ⓒ 송창진 기자


◆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 단기적인 계획으로는 오는 11월28일에 열리는 <에르나니>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올해 처음 <호인 라인>이라는 창작극을 기획했습니다. 소극장에서 할 수 있는 2인 오페라인데요. 이런 창작극들이 앞으로 저의 다음 세대들, 후배들에게 창조에 대한 중요성을 알리고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그리고 창작극에 대한 대중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성악가 국윤종은, 테너는 로맨틱한 이미지, 남성적이면서 영웅적인 이미지, 혁명적인 이미지 등 작품에 따라 다양한 이미지를 표현하고, 모든 영역의 감각과 감정을 소화할 수 있어야만 가능한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오페라라는 한 작품이 완성되어 무대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공부가 필요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베르디의 오페라 <에르나니>의 주역을 맡은  테너 국윤종을 11월28일(토)~ 29일(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서 다시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오페라 〈에르나니〉에서 주인공 '에르나니' 역을 맡은 국윤종 씨와 휴먼에이드포스트 송창진 기자가 인터뷰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유선우 사진기자
오페라 〈에르나니〉에서 주인공 '에르나니' 역을 맡은 국윤종 씨와 휴먼에이드포스트 송창진 기자가 인터뷰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유선우 사진기자

 


* 현재 송창진 기자는 휴먼에이드포스트에서 생생한 '포토뉴스'를 취재하고 발굴하고 있는 발달장애 기자입니다. '쉬운말뉴스' 감수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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