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만난 사람] 여성안전을 책임지는 경찰청 1호 여성안전기획관 조주은 씨
[기자가 만난 사람] 여성안전을 책임지는 경찰청 1호 여성안전기획관 조주은 씨
  • 남하경 기자
  • 승인 2020.12.04 14: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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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안전한 사회가 되려면 남성의 의식 변화가 무엇보다 시급합니다"
조주은 경찰청 생활안전국 여성안전기획관이 집무실에서 일하고 있어요. ⓒ 유선우 사진기자
조주은 경찰청 생활안전국 여성안전기획관이 집무실에서 인터뷰하는 모습이에요. ⓒ 유선우 사진기자

[휴먼에이드포스트] 지난 11월 말, 경찰청 생활안전국 여성안전기획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조주은 씨를 중구 순화동에 있는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어요. 성범죄, 스토킹, 데이트 폭력, n번방 사건 같은 디지털 성범죄 등 여성 대상 범죄가 날로 증가하는 요즘, 정부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해 경찰청 내에 여성안전기획관을 새로 만들었어요. 이 자리에 바로 조주은 씨가 적임자로 발탁되어 여성안전과 치안정책, 여성범죄 수사 및 기획의 업무를 맡게 되었어요.

조주은 씨는 앞서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 장관 정책보좌관, 국회 입법조사관으로 일했던 경력을 살려 여성을 위한 정책을 제안하고 여성안전을 책임지는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다음은 조주은 씨와 나눈 인터뷰 내용이에요.

◆ '여성안전기획관'이 지난해 5월에 신설되었다고 들었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시나요?

◇ 그 자리는 작년 5월7일에 만들어져 6월에 공고가 났었는데 당시에는 적격자가 없었어요. 7월 말 재공고가 났을 때 지원을 해서 제가 최종 합격을 하고 작년 12월24일에 첫 출근을 했습니다. 그래서 자칭 '경찰청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하곤 합니다. (웃음)

제가 하는 일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여성안전과 관련된 경찰청 내부조직을 이끄는 것입니다. '여성범죄수사과' '여성안전기획과' '아동청소년과'를 비롯해 여성안전 관련 10개 과의 과장들과 함께 한 달에 한 번씩 '여성안전전략(치안정책)협의체'라는 회의를 주재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그때그때 여성안전과 관련해 조정하거나 공유할 사안들을 서로 협의하고 논의합니다.

다른 하나는 대외적으로 유관 여성단체들과 경찰청 사이에서 소통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성매매 방지를 위한 전국연대 등 여성단체들은 △성폭력 관련법(1994년 제정) △가정폭력 방지법(1997년 제정) △성매매 방지법(2004년 제정) 등 여성 대상 범죄를 예방하는 법률이 만들어지는 데 앞장섰던 곳이거든요. 이런 역할을 하는 여성단체의 정책 제안이나 시정 요구를 잘 귀담아듣고 그런 지적사항을 정책에 반영하는 것도 저의 업무 중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여성안전정책자문단'이라는 이름으로 여성 안전과 관련된 여성단체 대표, 국회, 행정부 등 각계의 전문가 13분을 모시고 분기마다 회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여성의 안전을 위해 경찰청에 있는 경찰공무원들과 열심히 소통하겠다"는 조주은 여성안전기획관이에요.
"여성안전을 책임지는 자리에서 경찰 내부조직, 대외 여성단체 및 시민단체와 열심히 소통하겠다"는 조주은 여성안전기획관이에요. ⓒ 유선우 사진기자

◆ 경찰청에서 처음으로 일하게 되셨는데 여가부에서 일할 때와는 어떻게 다른가요?

◇ 제가 전에 몸담았던 여가부의 장관 정책보좌관 업무는 직원들과 장관의 가교 역할, 청와대와 여가부, 여가부와 시민단체와의 소통창구 역할을 하는 것이 주된 일이었어요. 여가부에서는 제가 실제로 어떤 업무를 집행했다기보다 해결해야 할 사안에 대해 정무적인 판단을 내리고 시민사회단체 같은 외부의 신선한 정책 제안을 검토‧수용하는 역할을 많이 했어요.

예를 들면 제가 여가부 있을 때 아이돌봄 지원사업 담당 공무원들이 어려워하던 일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준 적이 있어요. 여가부와 민주노총에 가입된 '아이돌보미' 노동조합 사이에 갈등이 깊었거든요. 처음에는 여가부가 아이돌보미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아이돌보미 노조에서 여가부를 상대로 아이돌보미에게 퇴직금과 각종 수당을 지급하라고 소송을 걸었죠. 나중에 그분들의 요구가 일부 받아들여져 노동자성을 인정받으면서 퇴직금, 4대보험 등 각종 수당을 받게 되었지요. 아직도 몇 건의 소송이 남아 있긴 하지만, 제가 아이돌보미 노조와 여가부 사이에서 교량역할을 하면서 갈등을 해소시키려고 노력했어요.

또 한번은 여가부의 양육비이행관리원과 양해모(양육비 해결을 위한 모임) 사이의 갈등과 오해를 중재하기도 했어요. 양육비는 아이의 생존권과도 관련되는 사안으로 양육비를 끝까지 안 주는 사람들은 얼굴을 공개하기도 했잖아요. 양해모 분들이 삭발까지 감행하며 요구했던 것은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한 운전면허 정지 △여권 발급 중지 등의 형사처벌이었어요.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결국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한 운전면허 정지를 내용으로 한 법안 개정이 이루어졌죠. 사실 이 법안은 우리 경찰청 교통국에서 담당하는 업무여서 경찰청과도 관련이 많아요. 올해 6월 법안이 통과된 다음에 그 업무를 담당했던 가족지원과장님이 저한테 감사하다고 메신저로 연락을 보내왔어요. 제가 여가부에 있을 때 양해모 분들과 면담도 해주고 중간에 다리를 놔줘서 잘 해결된 것이라며….
지금 경찰청 업무는 앞에서 말했듯이 정해진 제자리에서 여성안전과 관련된 업무를 챙긴다는 점, 여가부와 달리 업무의 공식이나 형식이 있다는 점에서 전방위로 대응임무를 했던 여가부의 업무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겠죠.

우리나라 최초 여성안전기획관으로 활동하는 조주은 씨예요. ⓒ 유선우 사진기자
우리나라 최초 여성안전기획관으로 활동하는 조주은 씨예요. ⓒ 유선우 사진기자

 

◆ 여성 정책적인 측면에서 지금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 여성 대상 폭력은 크게 성폭력・가정폭력・성매매 세 가지를 꼽아요. 사회 전반적으로 성매매가 범죄라는 의식이 낮은 것이 가장 큰  문제예요. 예를 들면 제가 국회 입법조사처에 있을 때에도 어떤 보고서에 '성매매 피해자'라고 언급하면 윗분들로부터 "성매매가 왜 가해와 피해냐? 성매매 피해자라는 말을 쓰지 말라"는 말을 듣곤 했어요. 윗분들은 대부분 남자들이잖아요. 

저는 성매매가 여성의 안전을 위협하는 굉장히 중요한 범죄이자 여성 대상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남자들은 성욕을 주체할 수 없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성욕이 약하고 자제할 수 있다'는 식의 남성과 여성의 성적 욕구를 다르게 규정하는 이중규범이에요. 그런 점에서 '성매매가 여성 대상 폭력이다'라는 의식이 사회적으로 확산됐으면 해요.

또 성매매 피해자로 인정받기가 매우 어렵다는 문제도 있어요. 관련법에 성매매 피해자에 대한 정의가 있지만, 아주 애매해요. 성매매 여성이 자발적으로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해도 과연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하고 싶은 여성이 어디 있겠어요? 어떻게 보면 극한의 코너에 몰리면서 보이지 않는 사회구조적인 압력에 의해 성매매를 할 수밖에 없는 여성들이 대부분이지요. 아직까지는 성매매 피해자로 인정받기엔 법의 문턱도 아주 높아요. 그러다 보니 안타깝게도 실제 성을 판 여성이 성매매 사범으로 분류돼서 처벌받고 있는 상황이에요.

 

◆ 여성안전기획관으로서 앞으로 하고 싶거나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 전국에 총 18개의 지방경찰청이 있고 그 아래 255개 경찰서가 있는데, 지금 제가 담당하고 있는 성폭력・가정폭력 관련 범죄는 여성청소년과 안의 '여성청소년(여청)수사팀'이 맡고 있어요. 그런데 성매매 단속은 생활안전국의 생활질서과에서 맡고 있어요. 그리고 피의자를 검거하면 수사는 또 다른 팀에서 담당해요. 이에 대해 성매매 방지 관련 여성단체에서는 성매매 단속과 수사를 같은 부서에서 하라고 요구하고 있어요. 성매매 관련 사건을 여청수사팀으로 갖고 오면 사실 업무가 늘어나지만, 지금 여청수사팀이 맡고 있는 실종사건 업무를 형사과로 이전하면 좋을 것 같다는 개인적인 바람을 가지고 있어요. 경찰청 본청 차원에서 이런 업무조정이 이루어졌으면 하는데 사실 어려움이 많아요. 일선에 있는 직원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설득하려는 노력이 많이 필요하죠.

또한 여성 대상 폭력과 관련한 통계도 세분화될 필요가 있어요. 지금처럼 성매매 여성들이 성매매 사범으로 분류돼서 처벌받는 상황이니, 하다 못해 성매매 사건 중에 성별 통계라도 한번 보고 싶은데, 그런 통계자료가 없어요. 관련 통계가 정리되면 이런 자료를 바탕으로 성매매가 여성 대상 폭력이라는 사실이 전 사회적으로 공론화 및 확산될 수 있고, 경찰청 내부에서도 제대로 된 단속과 수사를 할 수 있어요. 그리고 피해자 보호 및 지원도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조주은 기획관이 기자와 함께 사진을 찍었어요. ⓒ 유선우 사진기자
조주은 기획관이 기자와 함께 사진을 찍었어요. ⓒ 유선우 사진기자

◆ 여성의 안전을 위해서 여성이 해야 할 노력과 남성이 해야 할 노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몇몇 사람들이 제게 왜 남성안전기획관이 없느냐, 이건 차별 아니냐고 얘기하기도 해요. 하지만 성폭력・가정폭력・디지털 성범죄의 90% 이상이 피해자가 여성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여성의 안전을 얘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출산율이 OECD 국가 중에서 최저일 정도로 우리 사회의 저출산 문제가 굉장히 심각하잖아요. 한국사회에서 저출산이 심각한 원인 중 하나는 사실 결혼을 안 하고 싶어하는 여성, 즉 비혼 여성들이 늘어나기 때문이거든요. '성별간 전쟁'이라고까지 일컬어지는 요즘 상황을 보면서 우리 문화가 지금 과도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에는 자녀가 하나나 둘, '소자녀화'되는 상황이라 남아선호사상도 없어진 것 같아요. 가족 내 자원 배분에서도 여성이 차별받는 경우가 거의 없잖아요. 여성들의 의식이 진취적이고 독립심도 강한 경향을 보이면서 굉장히 빠르게 변하고 있고요. 그런 세대인데 아직까지도 남성들의 의식이 거기에 못 미치고 있는 것이 문제인 거죠. 여전히 과거 아버지 세대가 갖고 있던 남성 우월주의적인 생각을 가진 남성들도 일부 있다 보니까 서로 삐걱거리게 되는 것이죠.

예를 들어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가 되는 과정을 보면 알 수 있어요.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피해자의 60% 이상이 10대예요. 요즘 10대 남자아이들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성욕이 높다는데 여자아이들도 마찬가지거든요. 10대는 자기 몸에 대한 관심, 자기 몸을 과시하고 싶은 욕구가 높은 시기예요. 그런데 그것을 이용해서 디지털 범죄를 저지르는 남자들이 있다는 것이 문제죠. 오히려 여성에게 "이런 야한 사이트에 왜 들어갔어?"라고 탓하니까,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신고를 못 하는 거예요.

지금 여자들은 성적인 욕구나 자기 몸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의식도 자립적이고 주체적으로 변해가고 있는데, 여성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가진 일부 남성들은 여전히 화장실에서 불법 촬영을 하고 성관계 동영상을 몰래 찍는 행위를 하고 있잖아요? 남성들의 의식이 좀 더 변화할 필요가 있어요. 여성을 자기의 소유물이나 성적 놀잇감이 아니라 자신과 동등한 인간,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 인생을 같이 걸어갈 동반자라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 긴 시간 동안 자세하고 성의 있는 말씀 많이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조주은 기획관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우리 사회가 더욱 더 여성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경찰이 다양한 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어요.

나라와 국민을 지키는 경찰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 기사정리 : 휴먼에이드포스트 편집국

 

* 현재 남하경 기자는 휴먼에이드포스트에서 생생한 '포토뉴스'를 취재하고 발굴하고 있는 발달장애 기자입니다. '쉬운말뉴스' 감수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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