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만난 사람] 조용히 '나의 세상'을 열다, 한승기 작가 어머니 이경아 박사
[기자가 만난 사람] 조용히 '나의 세상'을 열다, 한승기 작가 어머니 이경아 박사
  • 남하경 기자
  • 승인 2021.02.16 16: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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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지만 한 발짝씩 세상 밖으로 내딛는 소중한 발걸음"

 

한승기 작가의 어머니 이경아 교육학박사가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어요. ⓒ 휴먼에이드포스트
한승기 작가의 어머니 이경아 교육학 박사가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어요. ⓒ 유선우 사진기자

 

[휴먼에이드포스트] 설날 연휴를 조금 앞둔 2월9일, 한승기 작가의  개인전 'My Own World(나의 세상)'가 열리는 서초구립한우리정보문화센터 갤러리 활(活)을 찾았어요.

그곳에서 관람객을 기다리는 한승기 작가와 그의 어머니 이경아 박사를 만날 수 있었어요.

한승기 작가는 자폐성 장애인이지만, 누구보다 뛰어난 집중력과 작품에 대한 열정을 갖고 창작 활동을 해서 각종 도예 공모전에서 상을 받았어요.

그의 어머니인 이경아 박사는 현재 도닥임 아동발달센터에서 센터장이자 교육학박사, 가족·청소년 상담사를 맡아 일하고 있어요.

한승기 작가와의 직접적인 소통이 어려워 대신 이경아 박사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한승기 작가의 개인전 ‘My Own World(나의 세상)’ 포스터예요. ⓒ 남하경 기자
한승기 작가의 개인전 'My Own World(나의 세상)' 포스터가 붙어 있어요. ⓒ 남하경 기자


◆ 한승기 작가님의 작품에 대한 평가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 '굉장히 자세하고 세밀하게 했다'라거나 '어떻게 찰흙과 그림을 이렇게 잘 만들고 그릴 수 있느냐?'라고 감탄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리고 '작품에서 밝은 느낌이 들고, 굉장히 유쾌하다'라고 얘기해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그게 참 좋았어요.

 

◆ 저도 작가님의 작품을 보고 그렇게 느꼈어요. 그런데 박사님께서는 작가님이 예술활동 하는 것을 처음엔 걱정하고 반대하셨다고 들었는데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 제가 전시회를 소개하는 팸플릿 속 작가 노트에도 그 이유를 썼는데요. 자폐성 장애인들의 특징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만 집중하고,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잘 안 하는 것이에요. 저의 아들도 가족이나 학교에서 만나는 사람들과는 대화를 안 하고 작품을 만드는 일에만 몰두했어요. 사람들이 승기의 작품을 보고 싶어서 보여달라고 요청하면 자꾸 숨어버리기만 하니까 걱정이 많았죠. 그래서 '너무 그것만 하지 말아라'라고 말해야 하는지 아니면 '그래, 네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니까 지원해줄게'라고 말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을 했어요.

 

◆ 아무래도 제 생각에는 작가님 입장에서는 내가 하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한테 인정받고 싶은데 어떤 사람들이 '왜 이런 걸 그리고 있어?'하고 말로 상처를 줄까 봐 숨은 것 같아요.

◇ 정확하게 잘 보셨어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잘 그린다'든지 '컴퓨터 작업을 잘한다'라는 칭찬을 받았지만, 비웃음도 받았어요. 주변에서 '저 아이는 그림밖에 그릴 줄 모른다', '공부를 못하고, 말도 하나도 할 줄 모른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고, 자기가 그린 그림을 가지고 친구들이 '무엇을 그렸는지 보자'라며 가져가서는 아이를 자주 놀리곤 했어요. 그래서 자기 그림 파일이나 종이에 그린 것들을 다른 사람한테 보여주는 걸 싫어했어요. 뺏길까 봐, 아니면 구겨서 버릴까 봐 불안해했지요.

한승기 작가는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찰흙으로도 세밀하게 게임,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빚었어요. ⓒ 휴먼에이드포스트
한승기 작가는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찰흙으로도 세밀하게 게임,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빚었어요. ⓒ 유선우 사진기자

◆ 작가님에게는 엄청 소중한 것인데요.

◇ 그렇죠. 제가 다른 사람한테 보여주려 할 것 같으면 정색을 하고 '싫어!'라고 얘기해서 절대 보여주지 않았어요. 저는 그게 무척 마음이 아팠어요. 승기의 심정이 어떤지 아니까요. '그래도 그림을 가지고 나와서 보여주렴' 하고 말할 수가 없잖아요.

 

◆ 작가님이 스스로 마음을 열어야 했겠네요. 어땠나요?

◇ 네, 자기 자신이 해야 했어요. 그래서 거기까지 가는 데 꽤 오래 걸린 것 같아요. 사실 이번 전시회 제목이 'My Own World(나의 세상)'인 것도 승기가 직접 만든 작품들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어요. 처음에 승기가 이 제목으로 하겠다고 말했을 땐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했어요. 그래서 글로 써보라고 했더니 바로 쓰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앞에다 '나의 세상을 당신에게 보여주겠습니다'라는 의미로 'I Will Show You(내가 보일 것입니다)'를 붙여도 되는지 물어봤어요. 그렇게 하라고 하더라고요.

 

◆ 제목의 의미가 멋있어요.

◇ 감사합니다.

 

한승기 작가가 자신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그린 그림이에요. ⓒ 휴먼에이드포스트
한승기 작가가 자신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그린 그림이에요. ⓒ 유선우 사진기자

 

◆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작가님 작품의 표현방식에 큰 변화가 보일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아까 잠깐 작가님이 제작한 애니메이션 영상을 보면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작가님의 마음이 느껴졌거든요. 박사님의 시선으로 봤을 때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 맞아요. 도전이 많았어요. 그리고 저는 승기가 굉장히 복잡하고 공격적인 작업, 강한 힘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작업을 하다가 나중에는 작품에서 어떤 캐릭터가 친구들과 편안하게 지내는 장면을 보여주는 게 제일 좋았어요. 그게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해요.

 

◆ 실제로도 작가님께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다는 마음을 조금씩 드러낸 것 같아요.

◇ 그럼요. 승기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 작품 속에 들어 있더라고요. 그걸 알고 나서 참 기뻤어요. 또 이번에 전시회를 하면서 느낀 것이 있어요. 예전에는 전시회에 어떻게 사람들을 초청하고, 작가로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승기에게 설명하기가 굉장히 어려웠는데, 같이 창작작업을 하거나 다른 작가의 전시회에 초대를 받는 등 여러 경험을 하면서 승기 나름대로 이해하는 게 있었나 봐요. 이번에는 작품을 준비하는 것도 자기가 능동적으로 하고, 작품을 배치하는 것도 직접 했어요. 전시회에 찾아오는 분들께 감사하다고 표현도 하고요. 좋게 달라진 것 같아요.

 

한승기 작가가 그린 어두운 밤 오래된 성이 그려진 게임의 배경이에요. ⓒ 휴먼에이드포스트
한승기 작가가 그린 어두운 밤 오래된 성이 그려진 게임의 배경이에요. ⓒ 유선우 사진기자

 

◆ 박사님이 제일 좋아하는 작가님의 작품과 작가님이 가장 애착을 가지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제가 좋아하는 작품은 'We bare bears(위 베어 베어스)'에 나오는 곰들이에요. 승기가 지금까지 안 다루던, 별로 좋아하지 않는 캐릭터인데 저의 눈에는 너무 귀엽고 좋더라고요. 그리고 승기는 자기 모습을 마음대로 변신할 수 있는 로봇을 만든 작품을 좋아해요.

 

◆ 한승기 작가님의 장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전보다 더 많은 것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 큰 장점 같아요. 예전에는 자기만의 틀이 너무 강했어요. 작품 활동에 몰두하는 게 외롭지 않을지 걱정을 많이 했는데 성인이 되고 나서는 감정 조절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걸 스스로 배우고 있어요. 그리고 그림들이 훨씬 더 부드러워졌어요. 그래서 '앞으로는 그런 것이 많이 확장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승기의 작품을 보고 미소를 지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승기의 세상에 누군가 놀러 와서 '작가님의 그림 덕분에 힘을 낼 수 있었어요.'라고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단지 TV 속 만화 혹은 게임 캐릭터들이 모인 공간 같아 보이지만, 그 안에는 한승기 작가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한승기 작가가 앞으로 보여줄 새로운 세상이 궁금하고 기대되는 전시회였어요. 그리고 그 세상을 함께 공감하고 진짜 친구가 될 사람들이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현재 남하경 기자는 휴먼에이드포스트에서 생생한 '포토뉴스'를 취재하고 발굴하고 있는 발달장애 기자입니다. '쉬운말뉴스' 감수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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