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둥이 최달용 씨의 서울살이는 어땠을까요?"
"해방둥이 최달용 씨의 서울살이는 어땠을까요?"
  • 송인호 수습기자
  • 승인 2021.03.02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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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생활사박물관 '세대 공감' 전시, 서울의 발전모습과 세대간 이해를 보여줘요
큰 글씨로 '세대 공감'이 쓰여져 있어요. ⓒ 송인호 수습기자
큰 글씨로 '세대 공감'이 쓰여져 있어요. ⓒ 송인호 수습기자

[휴먼에이드포스트] 지난 2월26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위치한 서울생활사박물관에 다녀왔어요.
이곳 기획전시실에서 작년 12월8일부터 올해 3월28일까지 '세대공감-최달용의 서울살이'를 전시해요.
이번 전시는 1부 '서울과 해방둥이의 성장 ' 2부 '피난 셋방살이에서 변리사가 되기까지' 3부 '우리, 서울에서 살아가다'라는 3가지의 주제로 나눠서 전시를 해요. 

생활사박물관 입구예요. ⓒ 송인호 수습기자
생활사박물관 입구예요. ⓒ 송인호 수습기자

1부 '서울과 해방둥이의 성장'에서는 6.25전쟁과 이후 산업화 세대의 모습을 보여줘요. 
1945년에 만 35년간의 기나긴 식민통치에서 해방된 감격의 환호성과 더불어 세상에 태어난 해방둥이들이 있었어요. 
이들이 처음 맞닥뜨려야 했던 세상은 가난하고 참담한 현실이었어요. 
해방둥이들은 한국경제의 성장을 이끈 산업화의 첫 세대였어요.

옛날 세탁기의 모습이에요. ⓒ 송인호 수습기자
옛날 세탁기의 모습이에요. ⓒ 송인호 수습기자

2부 '피난 셋방살이에서 변리사가 되기까지'에서는 최달용이라는 분의 이야기를 보여줘요.
최달용은 광화문 근처에서 2남 3녀 가운데 넷째로 태어났어요. 
본명은 '최달웅'이었으나, 행정착오로 '최달용'으로 호적에 이름이 올라간 것을 중학교 입학 서류 준비과정에서 알게 되었어요.
그가 5살 때, 6.25 전쟁이 일어났고 최달용과 가족들은 1950년 12월 경부선 열차에 올라타고 뒤늦은 피난을 떠났어요.
종전 이후 그는 가족과 함께 서울로 돌아와 신당동의 어느 다세대 택에서 10여 가구와 함께 살았어요. 

옛날 전화기들의 모습이에요. ⓒ 송인호 수습기자
옛날 전화기들이 전시되어 있어요. ⓒ 송인호 수습기자

3부 '우리, 서울에서 살아가다'는 서울시가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줘요. 
현대 한국의 사회발전을 흔히 '압축 근대화'라 일컬어요.
'한강의 기적' 이라는 말은 서울이 바로 이 '압축 근대화'의 주 무대였음을 뜻해요. 
1962년에 100달러에도 못 미치던 1인당 국민소득이 40년 만에 1만 달러로 100배 이상 늘어났어요. 
또 100만명도 되지 않던 서울의 인구는 40년도 채 되지 않아 그 10배인 1000만명을 넘어섰어요.

이번 전시로 과거의 모습들을 돌아보면서 한국사회가 발전해 가는 모습을 이해할 수 있어요.
또한 기성 세대와 새로운 세대 간의 공감과 이해를 만들어준 전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현재 송인호 수습기자는 휴먼에이드포스트에서 생생한 '포토뉴스'를 취재하고 발굴하고 있는 발달장애 기자입니다. '쉬운말뉴스' 감수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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