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만난 사람] 봉사시간을 돈처럼 저축하는 곳, 타임뱅크코리아 손서락 대표
[기자가 만난 사람] 봉사시간을 돈처럼 저축하는 곳, 타임뱅크코리아 손서락 대표
  • 남하경 기자
  • 승인 2021.03.24 2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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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사람이 있어 뿌듯했어요"
손서락 타임뱅크코리아 대표는 우리나라에 타임뱅크를 더욱 멀리 전파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 유선우 사진기자

[휴먼에이드포스트] 지난 3월18일 타임뱅크코리아의 손서락 대표와 인터뷰를 가졌어요.

타임뱅크코리아는 서로 필요한 것을 시간을 많이 모아서 주고받는 곳인데요.

사람들에게 생소하게 들릴 수 있는 타임뱅크에 대해, 그리고 손 대표의 가치관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어요.

 

◆ 타임뱅크(시간은행)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해주세요.

◇ 타임뱅크는 시간을 기준으로 서로 봉사를 주고받는 것을 말해요. 쉽게 설명해드릴게요. 예를 들어 커피를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는 누군가가 다른 사람에게 1시간 동안 가르쳐주면 그걸 배운 사람은 반대로 1시간 동안 그 사람에게 자전거 타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겠죠. 그렇게 시간을 돈처럼 쓸 수 있고, 자신이 가진 것을 베풀 수 있습니다.

 

◆ 우리나라에 타임뱅크를 도입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 타임뱅크는 1980년대에 미국에서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2004년 경북 구미시에서 성공회 신부님을 통해 도입되었습니다. 구미요한선교센터 설립자 김요나단 신부님(한국이름 김장호)이신데요, 그분이 보호시설에 있는 장애인과 말기 암 환자분들을 대상으로 봉사를 많이 하셨어요. 그런데 봉사를 하는 사람은 항상 주기만 하고, 받는 사람은 늘 받기만 했어요. 두 사람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는 거죠. 봉사자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너무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했다고 해요. 또 받는 사람은 처음에는 자신을 도와주는 것을 고맙게 여기지만 나중에 당연시하면서 의존성도 생기고요. 그래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애인도, 어르신들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서로 나누면 봉사가 순환된다’라는 생각으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 다른 나라에서의 타임뱅크 제도와 우리나라에서의 타임뱅크는 어떤 것이 다른가요?

◇ 각각의 나라마다 상황과 조건이 달라서 다양한 모델이 있습니다. 현재는 미국과 영국 같은 선진국 외에도 태국, 중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에서도 생기고 있는데요. 다른 국가에서는 정부가 먼저 앞장서서 탑다운 방식으로 타임뱅크를 운영하고 있어요. 반면 우리나라는 작은 단위의 풀뿌리 운동으로 시작했고 나중에 정부, 공공기관들과 협업하고 있습니다.

 

◆ 구미에 있는 사랑고리은행 외에 또 타임뱅크가 새롭게 생길 수도 있나요?

◇ 제가 최근에 세어보니까 전국에 20곳이 있더라고요. 더 많은 지역에 타임뱅크를 만들기 위해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풀뿌리뿐만 아니라 울산 중구, 남원시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타임뱅크를 만들겠다고 연락해오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제가 전주에 가서 타임뱅크에 대한 강연을 하고 왔거든요. 그 강연회에 오신 장애인 활동가들이 전주에도 타임뱅크를 만들어보겠다고 말했습니다.

 

◆ 손서락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합리적인 인간은 무엇일까요?

◇ 타임뱅크는 그냥 봉사가 아니고 서로 주고받는 것입니다. 개별적이고 고립된 인간은 사실 태어날 때부터 가능하지 않거든요. 서로 의지하고 돕고 살아야 하죠. 그게 우리의 DNA에 박혀 있다고 생각합니다. 1980년대 이후에 신자유주의가 확장되면서 서로 경쟁하고 각자가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표준모델이었는데 그건 사실 불과 몇십 년밖에 되지 않았어요. 협력하고 공조하는 게 우리 인간의 본성인데 그런 모습을 되찾고 싶어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닌 '나는 너를 도와주고 너는 나를 도와주는' 상호적인 관계를 만들고자 합니다.

손서락 타임뱅크코리아 대표가 타임뱅크에 대해 설명하고 있어요. ⓒ 유선우 사진기자

◆ 손서락 대표님이 가장 행복했던 때는 언제였나요?

◇ 발달장애인이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는 카페 프렌즈가 타임뱅크에 참여했는데요. 정서적으로 좀 불안한 사람, 아직 한글을 모르는 사람 등등 장애로 인해 불편을 겪는 청년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래서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님께서 이 청년들이 누군가에게 갚아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셨는지 처음에는 저희 제안을 듣고 안 하려고 하더라고요. 발달장애인들이 돌려줄 게 많지 않은데 너무 많이 받으면 힘들어질 것이라고요. 그래서 아주 작은 것, 담배꽁초를 줍는 활동으로 환경보호 캠페인을 했어요. 또 카페 홍보를 위해 전단지를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했고요. 그러다가 요리교실을 하고 나서 남은 반찬과 도시락을 혼자 사는 어르신들에게 드리자고 말하니까 그 친구들이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나중에 누군가 저를 찾아와서 감사하다고 얘기했는데, 이유를 물어보니 누구도 자신에게 도와달라는 부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저는 가장 뿌듯했습니다.

 

◆ 가장 재미있게 보았던 책은 무엇인가요?

◇ 『누구도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는 책입니다. 타임뱅크의 가치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감동적이어서 다섯 번을 읽었어요. 또 30년 전에는 독일 작가 미하엘 엔데가 쓴 『모모』라는 책도 읽었습니다. 타임뱅크를 시작하고 그 책을 다시 읽었을 때 제가 느낀 것은 『누구도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에서 말하고자 하는 공동체의 회복 그리고 경쟁하기보다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위해 살아가는 시간을 잘 표현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권을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 손서락 대표님의 좌우명이나 신조가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 제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연대하는 것이에요. 저는 2010년대 초반에 요양원에서 일하면서 사람을 돕는 것에 돈을 필요로 하는 돌봄, 즉 시장화된 돌봄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돌봄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타임뱅크처럼 사람 간의 연대에서 나오는 힘에 커다란 희망이 있다고 봅니다.

 

손서락 대표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나눔의 가치가 타임뱅크를 통해 더 크게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 현재 남하경 기자는 휴먼에이드포스트에서 생생한 '포토뉴스'를 취재하고 발굴하고 있는 발달장애 기자입니다. '쉬운말뉴스' 감수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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