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4시간 일하는 엄마입니다"
"나는 24시간 일하는 엄마입니다"
  • 박희남
  • 승인 2021.06.10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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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 홍윤희 이사장 ⓒ 휴먼에이드포스트
무의 홍윤희 이사장 ⓒ 휴먼에이드포스트

[휴먼에이드포스트] 나를 부르는 호칭은 참 다양합니다. 누군가는 나를 보며 유명한 쇼핑몰 커뮤니케이션 부분 이사로 부르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착한기업 협동조합 무의 이사장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는 지민이 엄마로 불릴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내 딸 지민이는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입니다. 태어나자마자 척추 안에 암세포가 발견 돼 항암치료를 하지 않으면 죽느냐 사느냐의 일촉즉발 상황에 놓였고 장애에 대한 걱정은 그 다음 일이었습니다.

제왕절개를 한 후 회복실에서 쉬고 있던 나에게 남편이 다가와 물었습니다. 
"아이가 조금 아프대. 등 뒤에 종양이 있는데 양성인지 악성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수술을 해야 한다네. 하다가 잘못 될 수도 있대. 우리가 수술을 해 주는 것이 이 아이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최선의 노력일 수도 있어. 윤희야 만약에 우리가 마지막 노력도 해보지 않고 이 아이가 잘못됐을 때 너는 그 죄책감을 감당할 수 있겠니?"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어째서 다른 산모들 옆에서 들리는 아기 울음소리가 내게만 들리지 않는지, 어안이 벙벙한 나에게 남편은 차분히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아이가 수술이 잘 되도 장애를 갖게 될 확률이 높아. 그래도 20년 정도 후에는 장애인들을 위해서 세상이 더 좋아지지 않겠어? 그게 아니라면 우리 이민 가서 아이 키우자."

나는 자신없어 라는 대답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그 앞에서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 삶은 기적이야. 해볼 때 까지는 해보자. 그렇게 우리 가족은 힘찬 첫 걸음을 내딜 수 있었습니다.

기대했던 바와는 달리 현실은 낭만적이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차갑고 불편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 가족을 불편해했고 시선의 폭력에 나와 아이 아빠 그리고 우리 딸 지민이는 크고 작은 생채기를 얻어야 했습니다. 

나는 보고 느끼고 깨달으면서 현실을 직시했습니다. 이전과는 달라져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나는 우리 딸의 생채기를 위해서 그리고 또 다른 우리의 딸들을 위해서 연고를 발라주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협동조합 무의가 만든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교통약자 환승 지도 콘텐츠입니다. 나는 협동조합 무의 홍윤희 이사장이 돼 그곳이 어디든, 누구든, 함께 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협동조합 무의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교통약자 환승 지도를 만들었다. ⓒ 홍윤희 이사장 제공
협동조합 무의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교통약자 환승 지도를 만들었다. ⓒ 홍윤희 이사장 제공
딸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홍윤희 이사장 ⓒ 홍윤희 이사장 제공
딸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홍윤희 이사장 ⓒ 홍윤희 이사장 제공

여러분은 아시나요?
장애인은 몸이 불편하다는 혹은 휠체어를 탄다는 이유로 귀찮음과 성가심의 대상이 됩니다.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을 이용하려는 장애인에게 사람들은 지나가듯 말을 흘립니다. "몸도 불편하면서 집에 있지 왜 나와서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해." 휠체어 장애인들은 오늘도 세상의 눈치를 보아가며 소극적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합니다. 

우리 딸 지민이는 세상구경을 참 좋아합니다. 감성적인 사춘기 소녀답게 아기자기 꾸미는 일도 좋아하고 잘생긴 아이돌 가수 팬 활동에도 꽤나 열정적입니다. 그래서인지 가보고 싶은 곳도 또 가야할 곳도 많습니다. 

엄마 마음 같아서는 집에 얌전히 있으면 좋으련만, 딸은 엄마 걱정이 무색할 만큼 잦은 외출을 감행합니다. "정말 괜찮겠어? 혼자서"라는 나의 질문에 "괜찮아. 엄마가 만든 지도 있잖아. 걱정 붙들어 매셔!"라고 다부지게 말하는 아이를 보면서 다시 한 번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협동조합 무의 활동을 하면서 느꼈습니다. 장애가 무의미한 세상은 결코 거저 오는 게 아니라는 것을. 남편이 오래전 그날 내게 이야기했던 장애인도 편안하게 잘 살 수 있는 세상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누군가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노고가 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음을.  

나는 지민이의 편을 많이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다르다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불쌍하고 측은하게 여기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종류의 다름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을 많이 만들어 주는 게 나의 꿈이자 목표입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24시간 일하는 엄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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