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경의 맛있는 칼럼] 놓친 봄꽃 대신 정다운 꽃차 나누어요
[김민경의 맛있는 칼럼] 놓친 봄꽃 대신 정다운 꽃차 나누어요
  • 김민경 칼럼리스트
  • 승인 2021.06.10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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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꽃차 ⓒ 김민경 칼럼니스트 제공
여러가지 꽃차 ⓒ 김민경 칼럼니스트 제공

[휴먼에이드포스트] '인생은 고달프다. 삭막하다. 앞이 어둡다. 자기가 하는 일들이 옳은 것인가. 무엇부터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언젠가는 맞이할 죽음 앞에 회한의 눈물은 흘리지 않을 것인가. 우리들은 이런 상황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우록(友鹿) 김봉호(1924~2003) 선생이 1977년에 쓴 <초의선집> 머리글이다. 어른의 글에 보이는 대로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들의 삶은 어렵기만 하다. 그런데 코로나까지 덮쳐 당혹스럽고 피로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나를 둘러싼 환경을 바꿀 수 없어 막막할 때는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에 작은 변화를 주어본다. 점심 먹고 짧은 산책을 해본다든가, 잠자기 전에 좋은 싯구 하나를 찾아 곱씹어 본다든가, 혼자라고 생각되는 날이면 새 볼펜을 하나 사본다든가, 요리할 때 맛있어지라고 중얼중얼 해보는 정도이다. 봄꽃이 핀 것도 못 봤는데 어느새 져버린 이번 봄에는 꽃차를 한두 잔 즐겨보기로 했다.

차라고 하면 우리는 잎차를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관심을 두고 찾으니 생각보다 다양한 꽃차가 있다. 맨드라미, 복숭아꽃, 매화꽃, 목련, 국화, 해당화, 홍화, 메리골드, 당아욱꽃, 구절초꽃, 쑥꽃, 찔레꽃, 아카시아, 생강나무꽃, 뚱딴지꽃, 라벤더 등으로 내가 외우는 꽃 이름보다 차 종류가 더 많은 것 같다.

꽃차의 맛도 만드는 과정에 따라 달라진다. 차를 만드는 과정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 덖는 일이다. '덖다'라는 의미는 '물기가 있는 재료에 물을 더하지 않고 타지 않게 볶아서 익히다'이지만 차를 만들 때 '덖는다'의 기준은 조금 달라진다. 전통 방식을 따라 무쇠가마솥에 꽃을 올려 열을 가하는 것을 말한다. 무쇠가마솥을 통하여 전달되는 뭉근하면서도 강렬한 열기가 꽃을 말리기도 하며, 맛과 향이 꽃 안에 잘 보존되도록 해준다. 꽃마다 덖는 온도와 시간은 다른데 보통 100~250℃ 정도에서 다섯 번을 덖는다. 이토록 뜨거운 온도에서 보드라운 꽃이 타서 사그라지지 않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하물며 한 번 덖은 꽃은 완전히 식혀서 상태를 보며 다시 덖기를 네 번 더 반복하여 맛과 향을 갖도록 한다니 놀랍다.
덖는 것 외에도 꽃차를 만드는 방법은 서너 가지가 더 있다. 우선은 자연 건조이다. 자연 건조는 대부분 손수 재취한 꽃을 가정에서 소량씩 먹고자 할 때 가능하다. 완전히 말리고, 위생적으로 건조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방법으로는 프라이팬에 한지를 깔고 꽃을 말리고 익히는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건조기를 사용하여 꽃을 말리는 방법이 있다. 정성과 시간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공을 들여 제대로 덖어 낸 차의 풍미가 제일 좋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우러난 꽃차 ⓒ 김민경 칼럼니스트 제공
우러난 꽃차 ⓒ 김민경 칼럼니스트 제공

꽃차는 세 번 음미한다. 눈으로 맛보는 차의 색, 코로 들이마시는 차의 향, 입으로 즐기는 차의 맛이다. 찻물 안에서 화사하게 퍼지는 꽃의 모양도 눈으로 즐기는 맛을 한층 좋게 한다. 만드는 과정에서 균형을 잃은 꽃차는 이 세 가지 맛을 갖지 못한다. 특히 꽃차 중 색과 향만 있고 맛을 갖지 못한 것이 많다. 싱겁고 밍밍하거나, 잡맛이 나거나, 뒷맛이 텁텁한 것이다. 좋은 꽃차는 차가운 물에 담가 오랫동안 우려도 그 매력이 여전하다. 또한 두세 번 우려도 은은한 맛을 그대로 즐길 수 있다. 무엇보다 꽃차에는 카페인 성분이 없어 누구라도 마실 수 있고, 상시로 마셔도 몸에 무리를 주지 않는다. 모든 식물에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독한 성분이 있지만 가공하는 과정에서 중화된다.

 

꽃차 중 마음이 훅 동한 것 세 가지만 짚어본다. 먼저 당아욱꽃차이다. 이름도 낯선 이 꽃은 제비꽃처럼 보랏빛이 진하고 곱다. 바닷가에서 자라는 꽃인데 금규라고도 불린다. 꽃에 따뜻한 물을 떨구면 화사한 향이 금세 퍼진다. 꽃잎이 점점 하얘지며 찻물은 푸르러진다. 향이 깃든 감미로운 맛이다. 푸른 차에 레몬이나 자몽을 한 조각 넣으면 핑크빛으로 변한다. 당아욱꽃차를 두 번째 우리면 투명한 연두색이 나며 또 다른 맛을 선사한다.
다음으로는 매화차이다. 매실 먹기도 아까운 참에 매화 그것도 봉오리를 채취해 차로 만든다니 얼마나 귀한가. 그만큼 값도 비싼 편인데 한 사람의 잔에 대 여섯 알만 넣고 여러 번 우려 마실 수 있어 다행이다. 매화차는 예로부터 봄맞이 호사로 불렸다. 흔치 않아 맛보기 힘들고, 매화의 향이 꽃보다 더 진하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실로 작은 봉오리에서 피어나는 향이 또렷하고 오래 간다. 맛은 담담하고 깨끗하다.
마지막은 홍화이다. 홍화는 앙증맞고 풍성한 꽃잎과 탐스러운 알맹이가 그대로 살아 있다. 큼직한 찻잔에 한 알 담가 우리면 살구색이 은은하게 퍼진다. 반들반들 윤기가 흐르는 맛이다. 홍화씨 기름이 유명한데 차에서도 윤택하고 기름진 맛이 고소하게 난다. 홍화는 쉽게 풀어지지 않기 때문에 찻잔에 귀여운 꽃을 내내 담가두고 보면서 마실 수 있다.
물처럼 두고 수시로 마시고 싶다면 목련, 국화, 감국 같은 차가 맛과 향이 부드러워 좋다. 계절이 바뀌는 요즘 같은 때에는 구절초, 목련, 생강나무꽃, 뚱딴지꽃차를 따뜻하게 마시면 된다. 손님을 맞이하여 차담을 준비 중이라면 당아욱꽃, 매화, 홍화 그리고 진달래, 복숭아꽃, 아카시아, 맨드라미, 해당화처럼 조금 특별한 꽃차를 준비해 이야기에서도 꽃을 피워보면 좋겠다.

 

여러가지 꽃차 ⓒ 김민경 칼럼니스트 제공
여러가지 꽃차 ⓒ 김민경 칼럼니스트 제공

좋은 꽃차를 구했다면 차에 알맞은 물이 필수이다. 수돗물이나 정수기를 통한 물보다는 생수를 사용하면 차의 맛과 향이 훨씬 생생해진다. 생수가 없다면 수돗물이나 정수한 물을 가만히 두었다가 웃물만 떠서 차를 내리면 된다. 꽃차도 블렌딩이 가능하다. 특히 매화차가 유용하다. 당아욱꽃과 매화를 섞으면 굉장히 독특하고 매력적인 차가 완성된다. 부드럽고 순한 목련과 매화를 섞어도 좋고, 녹차와 매화도 아주 잘 어울린다. 장밋과의 찔레꽃과 은은한 진달래를 섞어 차를 내리면 맛이 한결 깊어진다. 차를 섞을 때는 1:1을 기준으로 맛을 보고, 취향에 따라 비율을 달리하면 된다. 꽃차는 찌꺼기도 곱다. 설기떡에 넣거나 음식을 장식할 때 쓰는 것도 아이디어이다.

시중에 판매하는 꽃차는 식품의약안전처에 식용이 가능하다고 등재된 꽃으로만 만든다. 차를 위해 꽃을 재배하기도 하며, 재배지 주변의 야생화를 채취해 함께 차로 만들기도 한다. 꽃차도 식품이니만큼 깨끗한 환경이 중요하다. 꽃차를 사려거든 꽃을 키우고 거둔 사람과 재배 환경, 가공 공정 등을 잘 알아보고 구입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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