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만난 사람] 국가무형문화재 제22호 기능보유자 김혜순 매듭장
[기자가 만난 사람] 국가무형문화재 제22호 기능보유자 김혜순 매듭장
  • 정진숙 편집국장
  • 승인 2021.09.04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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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면 뭐하니〉 통해 대중에게 매듭의 아름다움과 가치 보여줘"
한국문화재단 국가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 공방에서 만난 김혜순 매듭장. ⓒ 정진숙

[휴먼에이드포스트] 지난 6~7월 MBC 예능 〈놀면 뭐하니〉'MSG워너비' 편에서 유재석(유야호 분)의 머리장식 매듭을 만든 장본인으로 알려져 방송과 SNS를 뜨겁게 달궜던 김혜순 매듭장(77세). 국가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에 마련된 매듭장 공방 안에는 은은한 절제미를 풍기는 고운 색감의 매듭 작품들과 갖가지 매듭 도구들이 가지런히 전시되어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실을 합해 끈을 짜는 도구인 끈틀. 여러 개의 톳짝이 매달린 원뿔 모양의 끈틀은 끈으로 매듭을 짓는 것만이 매듭 공예의 전부가 아님을, 하나의 매듭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수없이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함을 말해주는 듯했다.

끈틀 앞에 앉아 매듭을 지을 끈을 짜는 모습. ⓒ 김혜순 매듭장 제공
끈틀 앞에 앉아 매듭에 필요한 끈을 짜는 모습. ⓒ 김혜순 매듭장 제공

◇ 명주실로 맺어진 매듭과의 인연
예로부터 예의와 격을 상징하는 장식으로 쓰여온 매듭. 매듭 제작은 작품구상과 함께 작품에 들어갈 명주실을 염색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아름다운 색으로 물든 명주실은 해사와 합사 과정을 거쳐 끈틀에 앉혀진다. 끈을 짜기 위해서다. 3미터 끈을 짜는 데 꼬박 하루이틀이 걸린다. 그 끈으로 매듭을 짓기 시작하는데 우리나라 전통매듭은 길게 늘어뜨리는 술까지 장식해야 완성된다. 끈으로 맺은 매듭과 술이 갖가지 색으로 조화를 이룬 결정체, 온전히 장인의 손길로 빚어낸 정성과 인고의 예술, 그것이 바로 매듭이다.
대학에서 현대자수를 전공한 김혜순 매듭장은 결혼과 함께 자연스럽게 매듭과 가까워지게 되었다. 그 중개자는 바로 시누이이자 매듭 명예보유자인 김희진(87세) 매듭장. 매듭 기본형 38가지와 술 기법을 정리해 복원한 김희진 매듭장은 1976년에 국가무형문화재 제22호 기능보유자로 인정받고, 1979년 한국매듭연구회를 창립해 초대 회장을 지낸 인물로 2013년에는 명예기능보유자가 되었다. 
"소재가 똑같은 명주실이라는 점에서 현대자수와 매듭은 서로 연결돼요. 그래서 제가 좀 더 쉽게 매듭과 가까워질 수 있었고 별 부담없이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 같아요. 결혼하고 얼마 동안 시누님과 한 집에서 살았는데, 그때 당신이 작업하시면서 명주실이나 끈을 가지고 제 방에 오셔서는 실의 색감이 어떠냐, 매듭 짓는 것 좀 해보지 않겠느냐고 의논하고 권하기도 하셨어요." 그때가 1971년의 일이다. 
그후 한국매듭연구회 창립 멤버로 참여하며 스승의 매듭 솜씨를 고스란히 물려받기 시작했다. 1980년부터는 김희진 매듭장 조교로 전수교육에 항상 동행하며 매듭이수자, 전승교육사 과정을 차례로 거쳤다. 매듭의 기능을 배우고 익히며 후학 양성에 공을 들인 끝에 2017년에는 스승과 똑같이 국가무형문화재 제22호 매듭장 기능보유자로 인정받았다. 
매듭은 곧잘 인연에 비유되곤 한다. 그 비유는 반 세기 넘게 오로지 매듭에 빠져 살아온 김 매듭장에게도 해당한다. "매듭은 저에게 여러 가지 소중한 인연을 선물해줬어요. 문화계의 훌륭한 선생님들, 매듭을 사랑하는 다재다능한 제자들도 많이 만나게 해줬죠. 덕분에 아주 풍성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2017년 오사카한국문화원에서 열린 「한국전통공예 매듭전」 관련 이벤트 '한국전통공예 워크숍 - 매듭 만들기'에서 교육 중인 김혜순 매듭장. ⓒ 오사카한국문화원
2017년 오사카한국문화원에서 열린 '한국전통공예 매듭전' 관련 '한국전통공예 워크숍'에서 교육 중인 김혜순 매듭장. ⓒ 오사카한국문화원

◇ 매듭의 현대화 위해 매듭과 자수 접목 시도
김혜순 매듭장은 지금까지도 한국매듭연구회 강의를 비롯해 수많은 전수교육을 맡고 있다. 한국문화재단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매듭 강의와 문화재청 한국전통문화대학교(부여) 매듭 강의, 그리고 한국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외국인 학예사와 박물관 종사자들 대상의 '교육문화유산 전문가 연수'도 진행했다. 그밖에도 문체부 차원에서 직접 해외에 판견되어 매듭공예 전시와 함께 워크숍을 이끌기도 했다. 
수많은 작품활동을 해온 그가 가장 큰 보람을 느낀 것은 2003년 세계적 성모 발현지 프랑스 루르드 성지에 있는 무염시태성모(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성당에 한국을 대표하는 자수성화를 봉헌한 일이다. 작품명은 '한국의 성모자상'. 고운 한복을 입은 한국의 성모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화에 수를 놓고 매듭을 지은 다음 술을 달아 장식했다. "프랑스 성지에 봉헌된 한국을 대표하는 최초의 성화여서 더 뜻깊었고 루르드를 몇 번씩 오가며 1년 3개월 걸려 완성해 놓고 보니 정말 뿌듯했다"며 "매듭뿐만 아니라 수까지 놓을 수 있었던 것은 현대자수를 전공했던 덕분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 매듭장은 처음부터 매듭과 현대자수를 접목시켜 새로운 장르를 창출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전통매듭만을 고집하지 않고 매듭의 현대화를 위해 노력하던 그는 첫 개인전 '또 하나의 연(緣)-매듭자수전(2005)'으로 그 결실을 맺었다. 자수로 표현한 바탕 위에 매듭의 입체미를 곁들인 <옛날 옛적에>와 <환희> 등 현대적 창작품이 바로 그것. 한땀 한땀 정성이 들어간 자수와 끈으로 엮은 매듭의 만남을 통해 회화적 표현을 시도하고 싶었다는 김 매듭장은 관람객들이 의외로 현대적인 작품을 좋아해줘서 기뻤다고 회고한다. 

김 매듭장의 대형 잠자리매듭으로 꾸며진 MBC 놀면 뭐하니 100회 특집 스페셜 무대.
김 매듭장의 대형 잠자리매듭으로 꾸며진 MBC 〈놀면 뭐하니〉 100회 특집 스페셜 무대. ⓒ 〈놀면 뭐하니〉 영상 갈무리

◇ 절제와 겸손으로 빚어진 장인의 예술
〈놀면 뭐하니〉 100회 특집 방송(7월 17일) 스페셜 무대를 장식한 대형 잠자리매듭도 김 매듭장 작품이다. 〈놀면 뭐하니〉와의 뜻밖의 만남에 대해 이렇게 입을 열었다.
"처음에 방송국에서 남자 머리에 매달 매듭 제작 의뢰가 왔어요. 그때 나는 왜 남자가 머리에 매듭을 다느냐며 반대했어요. 부채 끝에 달거나 한복 허리띠로 매듭을 하면 모를까, 머리에 다는 것은 제 고정관념으로는 이해가 안 갔거든요. 그런데 전화를 끊고 가만 생각해보니 지금 시대에는 맞을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요. 더구나 방송 콘셉트라는데 내가 안 해주면 제대로 된 한국 전통 매듭을 달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의뢰를 수락했죠."
그는 올봄 내내 강의로 바쁜 와중에도 팔찌와 머리장식을 만드는 일로 무척 분주하고 힘겹게 보냈다. 그러면서도 무료로 제작해준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손사래를 치며 "작품에 어떻게 값을 매기겠어요. 방송국에서도 감사하게 생각하는 데다, 방송을 계기로 젊은이들도 전통매듭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으니 그걸로 된 거죠. 대중에게 매듭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보여준 기회가 된 것이기도 하잖아요. 오히려 제가 감사하죠"라고 답한다.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전통의 가치, 김 매듭장은 그 가치를 전하는 역할을 이렇게 곳곳에서 몸소 실천하고 있다. 

한국문화재재단과 네이버가 함께하는 〈박경림의 사는 의미〉 라이브 토크쇼 방송 모습. ⓒ 네이버 생방송 영상 갈무리
한국문화재재단과 네이버가 함께하는 〈박경림의 사는 의미〉 라이브 토크쇼 방송 모습. ⓒ 네이버 라이브방송 영상 갈무리

김 매듭장은 요즘 77세 나이가 무색할 만큼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8월19일에는 한국문화재재단과 네이버가 함께하는 라이브 토크쇼 〈박경림의 사는 의미〉에도 출연했다. 공예 분야의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들을 찾아가 작업장을 둘러보며 이야기를 들어보는 프로그램으로, 생방송 동안 요즘 '핫하다'는 라이브 커머스(네이버 라이브 쇼핑)가 동시에 진행됐다. 자신의 작품을 판매하지 않기로 유명한 김 동창의 걸작들을 구매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그래서였을까 실시간 참여자 수 10만명대를 기록했다. "카메라와 마이크, 조명 등을 설치하고 영상을 촬영하느라 공방이 시끌벅적했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떠올랐다. 

50여 년을 한결같이 단아하고 참한 매듭의 매력에 빠져 살아온 김 매듭장. ⓒ 정진숙

현재 그는 그동안 회원전을 통해 발표했던 작품들을 모아 선보이는 개인전과 매듭을 쉽게 배울 수 있는 책 출간을 구상 중이다. 개인적인 계획 외에 굵직굵직한 공식 일정도 잡혀 있다. 오는 11월 17~26일에는 제30회 한국매듭연구회 회원전이 계획되어 있고, 공교롭게도 같은 11월에 국립무형유산원(전주)에서 열리는 무형문화재 장인의 작업 무용극 '2021 국립무형유산원 브랜드 공연'에도 출연이 예정되어 있다. 국립무형유산원이 처음 시도하는 '생각하는 손-흙과 실의 노래'라는 제목의 퍼포먼스로 색다른 무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 매듭장은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며 인생의 핵심 덕목은 절제와 겸손이라고 강조한다. 
"절제된 생활의 멋과 욕심부리지 않는 겸손의 미를 추구했던 옛 조상들의 지혜를 본받아 꾸준히 노력하는 생활 태도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욕심이 없어야 마음과 몸이 편안해지고 그래야만 좋은 작품이 나오지요. 평생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한 덕분인지 지금까지 아픈 데 없이 건강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작업할 수 있었다는 게 감사할 뿐이죠."
50여 년을 한결같이 단아하고 참한 매듭의 매력에 빠져 살아온 김 매듭장의 마지막 말에서 화려하진 않지만 오랜 세월 결코 변하지 않는 인생의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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