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만난 사람] 선과 악 넘나들며 다양한 캐릭터 소화해낸 배우 박훈
[기자가 만난 사람] 선과 악 넘나들며 다양한 캐릭터 소화해낸 배우 박훈
  • 김민진 · 정민재 기자
  • 승인 2021.09.27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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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 맡은 역할에 대한 공감이 중요"
선과 악을 넘나드는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낸 배우 박훈. ⓒ 유선우 사진기자<br>
선과 악을 넘나드는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낸 배우 박훈. ⓒ 유선우 사진기자

[휴먼에이드포스트] 2007년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로 데뷔한 박훈은 2016년 드라마 〈태양의 후예〉로 눈도장을 찍으며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후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해치〉와 영화 〈검사외전〉 〈골든슬럼버〉 등에서 선과 악을 넘나드는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냈다.

최근에 상영된 영화 〈미드나이트〉에서는 유도와 복싱으로 단련된 해병대 출신 현직 보안업체 팀장 '종탁' 역을 맡아 동생 '소정'을 찾기 위해 도식(위하준)과 고군분투하는 추격 스릴러의 액션연기를 실감나게 보여줬다.

지난 14일 성수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배우 박훈을 만나 최근 근황, 배우가 된 계기, 정선에서의 어린 시절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요즘 어떻게 지내셨나요? 근황이 궁금해요.
◇ 현재 영화 〈미드나이트〉 홍보 일정을 마쳤고요. 요즘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블랙의 신부〉(차석진 역)를 촬영하고 있어요. 

◆ 배우를 꿈꾸게 된 계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 저는 사실 어렸을 때 '배우를 해야지'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가장 돈이 안 드는 예술을 찾았던 것 같아요.(웃음) '아무것도 없이 시작할 수 있는 일이 뭘까?'라고 생각하다가 자연스레 배우라는 직업을 찾게 된 것 같아요. 음악을 하려면 악기를 사야 하고 미술을 하려면 미술도구를 사야 하잖아요. 하지만 연기는 A4 용지나 이면지에 대본 프린트 한 장만 있으면 되니까요. 
또 그 과정에는 배우 한석규, 이병헌 선배님들의 작품을 보며 '나도 저런 일을 하면 내 삶이 달라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배우를 하게끔 만들지 않았나 싶어요.

ⓒ 유선우 사진기자

◆ 최근 영화 〈미드나이트〉에서 배우 길해연님과 진기주님은 청각장애인 역할을 맡았어요. 그것을 보면서 장애인 연기에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요? 만약 한다면 어떤 장애인 역할을 해보고 싶으신가요?
◇ 배우는 어떤 역할을 하든 그 역할에 공감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요. 그 인물이 어떤 장애를 갖고 있는지도 중요하지만 얼마만큼 그 인물에 공감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공감하려면 오랜 시간 노력해야 되고 장애인의 삶에 대해 전반적인 이해가 필요해요. 장애란 하나의 벽과 같아요. 제 생각에 모든 사람이 장애를 갖고 있는 같아요. 사회적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하지만 저는 비장애인들도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신체적 장애뿐만 아니라 마음의 장애는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데 연기자가 얼마나 그런 인물에 다가갈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지요. 사실 장애인 연기를 할 때 어설프고 얕게 흉내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공감할 수 있는 역할이라면 사실 어떤 장애를 표현해도 상관 없어요.
예전에 배우 조승우씨가 발달장애인을 연기한 〈말아톤〉이라는 영화를 인상 깊게 봤어요. 그때 '어떻게 그 역할에 공감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장애인 당사자뿐 아니라 장애인을 자녀로 둔 부모님의 입장, 당시의 사회적인 편견 등 영화에 많은 것이 표현되어 있었어요. 그런 영화라면 한 번 도전해보고 싶은 열망은 당연히 있어요. 기회가 되면 많은 분이 제가 느끼고 연기한 것에 공감하는 의미있는 연기를 하고 싶습니다.

보는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연기에 도전하고 싶다는 배우 박훈.  ⓒ 유선우 사진기자

◆ 실제로 영화 〈미드나이트〉의 종탁이었다면 어떤 오빠가 되었을까요?
◇ 제가 사실은 종탁처럼 남매가 아니어서 남매의 감성을 잘 몰라요. 요즘에 비글남매(짓궂은 장난을 많이 치지만 다정한 남매 사이를 말함)라는 말도 있는데 그런 관계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해요. 최대한 현실감을 살리고 싶어서 여러 사례를 찾아봤어요. 주변에서 가장 사이가 안 좋다는 남매들을 인터뷰해봤는데, 그 안에는 아주 뿌리 깊은 사랑이 있더라고요. 그런 사랑을 표현하기가 부끄럽고 약간 오글거려서 그렇지 아주 깊고 끈끈하게 맺어진 그 형제애나 남매애가 있더라고요. 영화 〈미드나이트〉에서는 그런 감정을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제가 만약 그 남매의 오빠였다면 무지하게 장난치는 남매 사이가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 KBS 〈옥탑방의 문제아들〉에서 아르바이트 많이 하셨다고 들었어요. 자신이 정말 하고 싶었던 아르바이트는 무엇이었나요?
◇ 저는 강원도의 작은 산골동네에서 자랐어요. 제가 살던 시골에는 패스트푸드점이나 편의점이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유니폼 입고 패스트푸드점이나 편의점에서 일하는 일반적인 아르바이트를 해볼 기회가 없었어요. 동네에서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라고는 퇴비 나르기나 이웃집 품앗이 등 농사에 관련된 일이었어요. 사실상 금액으로 치면 시급도 적고 여러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어려운 일이잖아요. 그런데도 어린 시절에는 유니폼 입고 아르바이트 하는 모습이 굉장히 멋있어 보였어요. 그런 서비스업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보고 싶었어요.

배우 박훈이 재밌는 표정으로 기자와 셀카를 찍고 있다. ⓒ 유선우 사진기자

◆ 〈녹두꽃〉에서 김창수 역할을 하셨을 때 인상깊고 카리스마가 있어 보였어요. 그 역할을 연기할 때 어떤 마음이었나요?
◇ 새벽 2시에 신경수 감독님이 전화를 하셔서 이런 말씀을 했던 기억이 나요. "마지막 회 대본에 김구 선생님의 어린 시절 역할이 나오는데, 분량은 작지만 굉장히 상징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박훈 배우가 출연해줬으면 좋겠어요." 저는 바로 "예,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죠. 배우 중에서 상징적 인물을 연기할 기회를 갖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제가 연기를 그 인물에 맞게 잘해서라 아니라 '김창수, 즉 김구'라는 인물이 주는, 사람의 마음을 울리게 하는 엄청난 파급력이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가서 서 있기만 하면 되거든요. 사실 김구라는 이름을 듣고 바로 '예'라고 결정한 것도 그런 이유이고요. 제가 뭘 어떻게 했다기보다는 그런 역사적인 인물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잖아요. 배우 입장에서는 굉장히 감사한 캐스팅이죠. 

-이상 김민진 기자

차기작 〈블랙의 신부〉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 유선우 사진기자

◆ 고향이 강원도 정선이라고 들었어요. 정선에서 보낸 어린시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 강원도는 정말 좋은 곳이에요. 그래서 기억에 남고 기억에 남아서 도시에서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어린 시절에는 자연 속에서 살았어요. 지금은 폐광이 되었지만, 제가 살던 동네는 연탄 생산지가 있는 탄광촌이었어요. 한창 바쁠 때 탄광에서 일하시던 부모님의 모습도 기억나고요. 동네 아이들과 함께 시커먼 흙먼지 묻히며 놀았던  기억도 나요. 조금만 나가 놀아도 꼬질꼬질해져서 다들 흰옷을 안 입었던 것 같아요. 항상 시커먼 옷입고 돌아다니던 기억이 남아 있는 곳이죠.

◆ 〈태양의 후예〉에서는 특전사,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서는 AR게임 속 인물, 〈아무도 모른다〉에서는 검사 등 그동안 많은 역할을 소화하셨는데요, 가장 인상 깊은 역할은 무엇이었나요? 
◇ 많은 분들이 보신 〈태양의 후예〉는 국민 드라마가 됐어요. 〈알함브라~〉는 젊은 세대에게 화제가 됐어요. 저 개인적으로는 〈아무도 모른다〉가 가장 인상에 남아요. 왜냐하면 처음으로 했던 악역이기도 했고 연기하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었어요. 사실 굉장히 어려운 역할이었는데 현장에서 감독님을 비롯해 다른 배우들과 극을 만들어가는 희열이 큰 작품이었거든요. 비록 악역이었지만 〈아무도 모른다〉에서 백상호 역할이 재미있었던 작업으로 기억에 남아요.

◆ 박훈 배우님을 좋아하는 팬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팬이 있다면요?
◇ 저는 연극으로 데뷔했는데요. 연극할 때는 아무래도 팬과 배우의 관계라기보다 가족 같은 느낌이 더 강했어요. 팬분들이 열심히 공연하라고 도시락도 갖다주시며 응원하셨거든요. 아날로그 감성이죠. 나중에 영화 〈미드나이트〉 무대인사를 하는데 연극할 때 만났던 팬분 중에 한 분이 관객석 앞자리에 앉아 계시더라고요. 눈이 딱 마주쳐서 깜짝 놀랐어요. 따로 연락하지 않았는데도 쭉 지켜봐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날은 아이콘택만 하고 다음 무대인사 때문에 헤어졌는데 데뷔 때부터 지켜봐주시는 팬분들이 많다는 생각에 무척 감사하고 기억에 남았어요.

배우 박훈이 기자와 사진촬영에서 친근한 자세를 취했다. ⓒ 유선우 사진기자

◆ 영화나 드라마 촬영하기 전 주로 무엇을 하시나요? 박훈 배우님만의 습관 같은 게 있나요?
◇ 제 외모를 보면 굉장히 외향적이고 활동적일 것 같은 느낌이 있잖아요? 그런데 집에만 있는 '집돌이'예요.(웃음)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는 대본을 보면서 그 인물에 대해 자료조사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주변인물 인터뷰도 많이 하고요. 사실 존재하지 않는 허상의 인물을 연기하고 싶은 생각이 없거든요. 그래서 시장이나 마트 등 제가 연기할 사람과 비슷한 캐릭터를 만나기 위해서 돌아다녀요.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는지 찾아나서는 거죠. 촬영 전에 그렇게 준비작업을 해요.
비슷한 사람을 찾은 다음 제가 연기할 캐릭터에 이 사람의 어떤 제스처나 말투 등 느낌이 맞겠다고 생각되면 그 느낌을 빌려와요. 자세히 관찰해서 복사하고 붙이기를 하는 거죠. 화면에서 보신 제 연기의 일정 부분은 다 누군가의 모습들이에요. 그렇게 인터뷰 작업도 하고 캐릭터 관련해서 찾아보고 연기 연습도 하면서 준비작업을 하는 거죠. 그외에는 주로 집에만 있어요. 제가 키우는 고양이와 비슷한 삶을 살아요. 고양이처럼 하루에 3분의 1 이상을 자거나 뒹굴뒹하면서 햇빛 보는 생활을 합니다.(웃음)

◆ 차기작으로 넷플릭스에서 제작하는 〈블랙의 신부〉에 출연하신다고 알고 있어요. 이 드라마에서 어떤 연기를 선보이실 예정인가요? 
◇ 〈블랙의 신부〉는 지금까지 제가 했던 역할과 많이 달라요. 이 작품을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 중 하나예요. 기본적으로 저한테 원하는 역할, 제가 하면 잘 어울릴 것 같은 역할이 있어요. 범죄자나 형사 등 대부분 '쎈' 역할들이에요. 그런데 이번에는 기존에 했던 역할과는 정반대의 역할이지요. 직업이 교수인 차석진이라는 역할인데 많이 기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으신가요? 포부나 목표를 간단하게 소개해주신다면요?
◇ 배우는 평가받는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이에요. 하지만 지금의 평가는 사실 의미가 없어요. 시간이 지난 후에 평가를 받아야 제대로 된 평가라고 생각해요. 시간이 지난 후 '저 배우는 참 좋은 작품 많이 했지' '그 작품에 저 배우 쓰길 잘했어'라는 얘기를 들으면 성공한 거겠지요. 보시는 분들과 같은 시대를 공유한 배우로서 제가 한 역할이 그분들에게 위로가 되었든, 공감이 되었든 영향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한마디로 '참 애썼어'라는 느낌을 줄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것이 제 목표라면 목표입니다.

◆ 지금까지 기자들의 질문에 성의껏 응해주시고 재미있게 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 정민재 기자    

한편, 배우 박훈이 출연 예정인 〈블랙의 신부〉는 상류층 결혼정보회사의 최고 등급인 '블랙'과의 결혼을 통해 인생역전을 꿈꾸는 욕망을 좇는 이들의 역할을 다루며, 박훈은 김희선, 정유진, 이현욱, 차지연과 연기 호흡을 맞출 예정이다.

 

* 현재 김민진 · 정민재 기자는 휴먼에이드포스트에서 생생한 '포토뉴스'를 취재하고 발굴하고 있는 발달장애 기자입니다. '쉬운말뉴스' 감수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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