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미 기자의 역사이야기] 왕실의 희로애락 투영된 '경희궁' 2
[나은미 기자의 역사이야기] 왕실의 희로애락 투영된 '경희궁' 2
  • 나은미 객원기자
  • 승인 2021.09.29 15: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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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본 '영조와 정조'의 삶
경희궁 숭정전 ⓒ 나은미 객원기자
경희궁 숭정전 ⓒ 나은미 객원기자

[휴먼에이드포스트] 조선 5대 궁궐 중 경희궁(慶熙宮)은 1617년 광해군이 조성한 궁궐이다. 이후 인조에서 철종까지 10명의 왕과 비빈이 기거했던 생활공간이다. 특히 숙종과 장희빈의 연애사는 물론 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 정조대왕의 암살 계획까지 파란 많은 세월이 이곳에 얽혀있다. 그중 영조와 사도세자의 소통 부재로 비극이 일어난 영화 <사도>와 정조대왕 암살 계획 실패를 그린 영화 <역린>의 현장이 있는 서궐 경희궁을 찾아가 보았다. 

영화 <역린>으로 본 정조대왕 암살계획 
1759년(영조 35년) 8세 이산이 세손에 책봉되었다. 그리고 3년 뒤 조부 영조와 부친 사도세자(이선, 추존왕 장조) 간의 갈등은 물론 노론 벽파의 거짓 밀고로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11세의 나이다. 이어 13년이 흐른 1775년(영조 51년) 12월, 영조의 노환이 깊어지자 경희궁 ‘집경당(集慶堂)’에서 24세의 세손 이산에게 대리청정할 것을 명한다.  
사도세자를 죽이도록 모함한 노론 벽파는 모두 만류하며 저항했다. 먼저 좌의정 홍인한이 대리청정을 취소하라고 상소하였고, 승지를 가로막으며 어명이 기록된 교지를 찢으며 반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해인 1776년 3월, 영조가 집경당에서 승하하자 세손 이산은 조선 제22대 왕으로 등극한다. 

정조는 영조의 시신이 있는 빈전에서 옥새를 받은 후 정전인 경희궁 '숭정전(崇政殿)'의 정문인 숭정문 앞으로 나아가 종친들과 문무백관이 동서 좌우로 나뉘어 도열한 가운데 즉위식을 치렀다. 정조실록에는 즉위식을 마친 (정조) 임금께서 빈전 문밖에서 대신들을 만나 명을 내리니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고 천명했다. 그리고 경희궁의 편전인 '자정전(資政殿)'에서 첫 업무를 관장한다.  
정조는 가장 먼저 사도세자를 죽이는데 가담하고, 세손으로 있던 자신을 핍박하며 살해하려 했던 자들에 대해 특단의 조치를 취하고 유배를 보낸다. 이때 궁지에 몰린 홍인한과 노론 벽파는 홍계희의 집에 모여 암살계획을 모색한다. 특히 홍계희는 사도세자의 행적을 영조에게 과장되게 고하여 죽음으로 몰아갔던 인물이다. 그는 이미 죽었으나 그 가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 즉위한 것에 불안을 느껴 홍계희의 손자인 홍상범이 궁중에 암살단을 난입시켜 정조를 살해하려 시도한다. 

영화 <역린>과 실제 역사 속 암살계획 
사도세자를 모략한 홍계희의 손자 홍상범은 천민 출신의 장사인 전흥문을 포섭하였다. 홍상범은 전흥문에게 재물을 주면서 혼인까지 시켜주기도 하였다. 한편 궁성을 경호하는 호위군관 강용휘를 포섭함으로써 뜻을 같이하는 20여 명의 자객까지 끌어들였다.
먼저 전흥문과 강용휘에게 각각 칼과 철편을 들고 궁궐에 난입하도록 지시한다. 그리고 자신은 20여 명의 자객을 거느리고 뒤를 따라 정조를 살해하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여기에 강용휘의 조카인 별감 ‘강계창’과 궁중의 나인 ‘월혜’가 궁중 길의 안내자로 포섭되었다. 

1777년(정조 1년) 7월28일, 홍상범은 마침내 거사 일을 정하였다. 정조가 즉위하자마자 홍인한, 정의겸 등과 함께 정조의 등극을 반대했던 아버지 홍지해가 귀양 가는 등 자신의 집안에 압박을 가해오는 상황에 위기감을 느꼈다. 
전흥문은 미리 모의한 대로 칼을 들고, 강용휘는 철편을 들고 궁궐에 잠입하였다. 홍상범도 20여 명의 자객들을 이끌고 뒤를 따랐다. 이들은 강계창과 월혜의 길안내로 정조가 머물고 있는 경희궁 존현각까지 도착했다. 그리고 강용휘와 전용문은 존현각 지붕 위로 올라가 주변을 살폈다.  
그러나 이들은 곧바로 정조의 호위무사에 의해 발각되고 말았다. 홍국영이 이끄는 금위영과 군사에 의해 초토화되었다. 결국 정조에 대한 8일간의 암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를 통해 정조는 평생 당쟁에 대해 극도의 혐오감과 함께 강력한 왕권 강화를 추구하게 된다. 

경희궁 숭정문 ⓒ 나은미 객원기자
경희궁 숭정문 ⓒ 나은미 객원기자

영화 <역린>은 그 긴박했던 하루를 시간별로 세심하게 그려낸다. 
먼저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러우면 겉에 배어나오게 되고, 겉에 배어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게 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인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며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는 <예기> 중용편 23장 글은 매우 암시적이다.  

정조 1년이 지난 1777년 7월28일 오전 3시, 끊임없는 암살 위협에 시달리며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정조(현빈 분). 그가 가장 신임하는 상책(정재영 분)은 왕의 곁을 밤낮으로 그림자처럼 지킨다. 
오전 4시, 날이 밝아오자 예순왕대비(정순왕후, 한지민 분)에게 아침 문안인사를 위해 왕대비전으로 향하는 정조. 그의 호위를 담당하는 금위영 홍국영(박성웅 분) 대장과 상책이 뒤를 따른다. 
오전 5시, 노론 벽파의 최고 수장인 예순왕대비가 "주상이 다치면 내가 강녕하지 않아요" 정조에게 경고를 하며 넌지시 자신의 야심을 밝힌다.  
오전 6시, 정조의 독서당인 존현각에 '강계창'과 수양딸인 궁중의 나인 '강월혜(정은채 분)'가 세답당에 가져갈 어의를 수거하기 위해 다녀가고,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김성령 분)가 찾아와 꿈자리가 흉했다고 말한다. 
오전 8시 30분, 조선의 최고 실력을 지닌 자객 '을수(조정석 분)'는 "왕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는다. 이렇게 왕의 암살을 둘러싸고 살아야 하는 자, 죽여야 하는 자, 살려야 하는 자들의 엇갈린 운명의 24시가 영화로 그려진다. 정조는 "바뀐다. 온 정성을 다해 하나씩 배워간다면 세상은 바뀐다"고 읊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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