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기] 가난한 포르투갈 이민가정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담은 〈리슨〉
[영화 감상기] 가난한 포르투갈 이민가정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담은 〈리슨〉
  • 남하경 기자
  • 승인 2021.12.21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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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인 소녀와 그 부모의 소리 없는 외침 "제발 제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영화 <리슨> 포스터. ⓒ 워터홀컴퍼니

[휴먼에이드포스트] 지난 9일 영화 <리슨>(아나 로샤 감독, 수입/배급: 워터홀컴퍼니(주))이 개봉하였다.
이 영화는 특이하게 영국에 사는 가난한 포르투갈인 이민자 가정을 배경으로 하는데, 이 가정에서 둘째인 청각장애인 소녀 루(메이지 슬라이 분)의 얼굴이 담긴 포스터가 인상적이다.
영국의 아동복지법을 소재로 한 실화 바탕 영화이기도 하다.

영국에 이민 온 포르투갈인인 벨라(루시아 모니즈 분)는 병을 앓고 학교를 가지 못한 채 늘 집에서 누워 있는 첫째 아들 디에구, 청각장애인으로 태어나 수어로만 이야기하는 둘째 딸 루, 늦둥이로 태어난 막내 제시 등 3남매를 키우고 있다. 남편 조타(루벤 가르시아 분)는 회사에서 월급이 밀려 수입이 없는 상태. 그래서 루와 제시를 길거리에 둔 채 슈퍼마켓에서 몰래 음식을 훔치고, 남편의 실수로 고장난 딸 루의 보청기를 고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영국 복지국 직원들의 가정방문이 있던 날, 하필 루의 몸에 원인 모를 멍이 생기게 된다. 멍을 본 루의 학교 선생님은 루가 아동학대를 받는다고 오해해 신고하고, 그 신고를 받은 복지국 직원들은 벨라 부부와 아이들을 강제로 분리한 뒤 아이들을 입양처리 하겠다고 벨라 부부에게 말한다.

결국 벨라의 가족은 며칠 동안 헤어져 서로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다가 복지국 직원의 감시 속에 다시 재회했을 때도 루와 벨라가 영어가 아니라 수어로 대화를 나누려 했다는 이유로 면회가 중단되는 일이 일어나고야 만다.

억울했던 벨라와 그녀의 남편은 우여곡절 끝에 예전에 복지국에서 일했던 한 여성 사회운동가의 도움을 받아서 아이들을 다시 데려오기로 결심한다.

복지국에서 아이들을 벨라로부터 데려가기 전, 벨라 가족이 소파에 모여 앉은 모습. ⓒ 워터홀 컴퍼니
복지국에서 아이들을 벨라로부터 데려가기 전, 벨라 가족이 소파에 모여 앉은 모습. ⓒ 워터홀 컴퍼니

아이들이 각각 다른 가정으로 입양되어 뿔뿔이 흩어질 위기였지만, 디에구가 입양되기 직전, 간신히 임시보호소에서 도망쳐 여성 사회운동가의 도움으로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루와 제시도 데려와야 했다.

제시도 입양이 확정되었지만, 루는 장애 때문인지 아무에게도 입양되지 못하고, 부모와도 다시 만날 수 없는 상태로 임시보호소에 남겨지게 되었다.

영화 ‘리슨’에서는 부모가 자녀들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그려지는 가운데 루의 멍에 대한 비밀도 밝혀진다.

장애 때문에 힘들었을 소녀 루는 부모와 오빠, 동생 등 가족과 헤어지는 더 큰 충격적인 일을 겪었지만, 낡은 종이카메라에 가족의 모습을 비춰 오랫동안 기억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가난해서 자신의 보청기도 새로 바꾸지 못하지만, 가족들 중에서 수어로 소통해온 엄마를 가장 사랑하는 것 같다.

벨라 또한 고향인 포르투갈을 떠나 영국에서 살아가는 것이 힘들었을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 남편과 포르투갈어로, 첫째 아들 디에구와 영어로, 둘째 딸 루와 수어로 상대방에게 맞춰 대화하며 가정을 이끄는 것도 힘들었을 것이다.

갑자기 아이들과 헤어지고 나서는 식음을 전폐하며 좌절했지만, 남편의 간곡한 설득을 들은 뒤, 엄마로서 아이들을 되찾기 위해 누구보다 많이 노력한 벨라에게도 연민이 느껴졌다.

영국의 사회복지 환경에 대해 알지 못해서 조금은 공감할 수 없었지만, 77분의 러닝타임이 짧게 느껴질 만큼 등장인물들에 몰입할 수 있는 영화였다.

이 영화에서 청각장애인 소녀 '루' 역을 맡은 메이지 슬라이는 실제 청각장애인으로, 첫 영화 데뷔작 <소리 없는 아이>에서 주연을 맡아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배우다. <리슨>에서도 뛰어난 연기로 관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영화 <리슨>은 작년 77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오리종티 상과 미래의 사자상을 받은 작품으로, 절찬 상영 중이다.

 

* 현재 남하경 기자는 휴먼에이드포스트에서 생생한 '포토뉴스'를 취재 및 발굴하고 있는 발달장애 기자입니다. '쉬운말뉴스' 감수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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