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만난 사람] 구글 인공지능 UX 수석 디자이너 김은주 씨
[기자가 만난 사람] 구글 인공지능 UX 수석 디자이너 김은주 씨
  • 정리 정진숙 편집국장
  • 승인 2022.02.28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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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해도 된다'는 기업환경이 창의력 원천임을 배워
"솜털처럼 가볍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고 싶은 소박한 바람"
구글에서 인공지능 대화 시스템 제작을 담당하는 인공지능 UX 수석 디자이너 김은주 씨. ⓒ 김은주 씨 제공

[휴먼에이드포스트]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김은주 씨는 졸업 후 디지털조선일보와 CJ에서 웹디자이너로 일하다 27살에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가면서 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미국 일리노이공대 디자인스쿨 유학 후 블랙웰컨설팅, 모토로라, 퀄컴 등 글로벌 기업에서 커리어를 쌓고 귀국, 삼성전자에서 일하면서 2015년 원형 스마트워치 개발로 ‘IDEA 디자인 브론즈상’을 수상했다. 2016년에는 ‘웨어러블 산업을 이끌 글로벌 18인의 여성리더’에 선정되었고 그의 열한 번째 직장인 구글에서는 ‘(인공지능) 어시스턴트’의 UX 수석 디자이너로 일하며 2020년 ‘올해의 디자이너’에 뽑혀 다시 한번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임을 입증했다.
쟁쟁하고 화려한 경력 뒤에는 어려움과 고민도 있었다. 작년에는 '프로 이직러'이자 '구글러'로서의 맷집과 아팠던 경험을 녹여내 청춘을 위로하는 책 『생각이 너무 많은 서른 살에게-25년간 세계 최고의 인재들과 일하며 배운 것들』을 펴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현재 남편, 쌍둥이 두 딸과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는 김은주 씨의 근황과 앞으로의 계획 등을 서면 인터뷰를 통해 들어봤다.

◆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일하고 싶은 구글의 문을 두드리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 매년 12월이 되면 하는 나만의 루틴이 있어요. 그 해에 한 일을 요약해서 이력서를 업데이트하고 지인들에게 안부 메시지를 보내는 거예요. 그리고 2년 후, 5년 후, 10년 후를 상상하면서 해야 할 일들을 점검해요. 2017년 12월에도 어느 해처럼 이력서를 업데이트하고 미래를 상상해봤죠. 그때 제 나이가 40대 중반이었어요. 저는 디자이너로 은퇴하고 싶은데 점점 관리자 역할이 늘어나고 있었고 한국에서는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이들은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 학원 없이는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 버거워했구요. 미국이라면 곧 중학교에 입학해야 하는 나이여서 여러모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어요. 
미국에서 대학원 시절에 만나 모토로라와 삼성까지 함께 다니면서 친하게 지낸 친구가 구글에 다니고 있었는데, 제 안부 메시지를 받고는 구글 인사팀에 추천해주었어요. 그렇게 구글과 얘기를 시작하게 됐어요. 특별히 구글에 가야겠다고 계획을 세웠던 건 아닌데 여러 가지 상황이 맞아떨어지면서 바로 구글로 이직을 하게 됐습니다. 
 
"인공지능이 상황과 맥락에 맞는 대화 가능하도록 디자인하는 일" 

◆ 현재 구글의 ‘(인공지능) 어시스턴트(Google Assistant)’ 부서에서 UX 수석 디자이너로 일하고 계십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담당하는지요? 덧붙여 구글에서 김은주 님의 하루가 궁금합니다. 주로 무슨 일을 하며 보내나요? 

◇ 구글에서 “오케이 구글, 오늘 날씨 어때?” 하고 물어보면 대답을 해주는 인공지능 대화 시스템을 만들고 있어요. 기술이 많이 발전했다고 하지만 기계가 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하게 만드는 건 여전히 쉽지 않아요. 사람들 대화를 잘 들어보면 의식의 흐름대로 삼천포로 빠지기도 하고, 서로 딴말을 하는데도 알아듣고, 심지어 눈빛만 보내도 서로 의미 전달이 되잖아요. 전라도 분들이신 저희 부모님이 ‘거시기'로 모든 대화가 가능하신 것처럼요.(웃음) 인간의 대화는 오감을 활용하고 사회적인 맥락과 개인의 언어능력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지는 종합예술이거든요. 저는 이렇게 컴퓨터가 대화에 필요한 시각 요소, 음성 요소, 촉각 요소를 고려해 상황과 맥락에 맞는 반응과 응답이 가능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디자인하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2020년 3월부터 재택근무 중이에요. 벌써 2년이네요. 재택근무가 이렇게 길어질지 몰랐는데 이젠 집 한편이 제 사무실이에요. 아침 7시쯤 일어나서 아이들 도시락 싸주고 8시에 등교시키면 커피 한 잔 마시며 여유 시간을 좀 가져요. 출근길 운전하는 시간이 없어져서 그것만으로도 아침이 훨씬 여유로워요. 9시부터 근무를 시작해서 보통 오후 5시, 늦어지면 6시 정도면 일을 마무리해요. 저녁 해먹고 TV를 보거나 인터넷도 하면서 놀죠. 뒷마당 작은 텃밭에 상추와 부추 새싹 올라오는 거 보면서 힐링도 하고요. 밤 10시에는 인터넷으로 북클럽에 조인해요. 1시간 동안 같이 영어 원서를 소리 내서 읽는 모임인데 영어 공부도 하고 독서도 하는 일타 쌍피 클럽이죠. 주중의 일과는 매우 반복적인 편이고, 주말에는 산이며 바다며 놀러 다녀요. 미국 생활은 한국에 비해 훨씬 단조로운 편이에요.

구글 본사(캘리포니아 마운틴뷰) 캠퍼스 공룡 조형물 앞에서. ⓒ 김은주 씨 제공

◆ 용감(과감)함과 도전정신이 지금의 김은주 님을 있게 한 밑거름이 아니었을까 짐작됩니다. 본인에게 그런 성향이 있는지 깨닫게 된 순간은 언제인가요? 혹은 어떤 상황에서 그런 자질이 발휘된다고 생각하나요?

◇ 전 제가 용감하거나 도전정신이 있다고 생각해 보질 않아서 간혹 이런 질문을 받으면 ‘내가 그런가?’ 하고 저를 되돌아봐요. 저는 성격이 급해요. 일을 빨리빨리 효율적으로 하는 걸 좋아하고요. 그래서 요리도 엄청 휘리릭 빨리 해요. 저는 싫증을 자주 내요. 비싼 옷을 오래 입기보다는 저가의 옷을 돌려 입는 편이지요. 재미없는 일을 잘 못해요. 그런데 재밌어 보이는 일에는 에너지가 넘쳐요. 과거에 대한 미련이 별로 없어요. 지나간 일을 잘 잊는 편이에요. 책임감이 강해요. 한다고 약속한 일은 어떻게든 마무리를 해요. 남을 시키는 것보다 직접 하는 걸 좋아해요. 남들이 보면 사서 고생한다고 하지만 전 그게 속 편하고 좋아요. 제가 이런 성향을 가지고 있다 보니 저는 그냥 생긴 대로 사는 건데 다른 사람들 눈에는 뭔가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용감하며 에너지가 넘쳐 보이나 봐요.(웃음)  

"디자인 통해 소비자 행동 변화 이끌어내는 게 UX 디자이너의 역할"

◆ 『생각이 너무 많은 서른 살에게』에서 ‘UX 디자이너는 기술자가 아니라 문제 해결자다’ ‘디자이너는 감정의 촉을 갈고닦아야 한다’ 등 인터렉션 디자인 분야에 대해 말한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모두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일 텐데요. UX 디자이너의 역할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디자이너의 역할과 확연히 차별화되는 부분은 무엇인지요?

◇ UX는 유저 익스피리언스(User Experience)의 약자로, 우리말로 하면 ‘사용자 경험 디자이너’거든요. 이 분야와 용어가 생긴 지는 20년도 넘었는데 여전히 뭘 하는 디자이너인지 모르는 분들이 많아요. 
제가 UX 디자이너라고 저를 소개하면 ‘디자이너’라는 말때문에 집 인테리어 디자인을 물어보는 분도 있고, 그림을 그려달라는 분도 있고, 디자이너가 패션 감각이 왜 그렇게 없냐고 핀잔을 주는 분도 있어요. (웃음) 상업디자인의 궁극적 목적은 소비자의 심리를 자극하고 만족시켜서 행동을 유도하는 것인데 시각적으로 예쁘다고 소비자들이 무조건 행동을 하진 않거든요. 쉬운 예로, 교육용 학습지의 경우에 실제 학습지를 쓰는 사람은 학생이지만 돈을 가진 구매자는 부모이고 구매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이죠. 그리고 유통구조에서 학습지를 판매하는 판매처의 관심은 또 다르고요. 그러니 학습지라는 제품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고려해야 하는 소비자군도 매우 다양하죠. UX 디자이너는 소비자와 접점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용자 경험’을 예측하고 설계하고 연구하고 만드는 역할을 해요. 그래서 실제 UX 디자이너 중에는 인지심리학을 공부한 분들이 많아요. 저도 학부 때 심리학을 부전공하고 싶었을 정도로 관심이 많았었고요. 소비자 행동의 저변을 이해하고 심리를 분석해서 디자인을 통해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는 게 UX 디자이너 역할의 핵심이죠. 그러려면 사람의 감정을 읽는 촉이 발달해야 하고요. 

김은주 씨는 "새로운 시도는 언제나 비효율적이고 낯설고 저항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 김은주 씨 제공

◆ 모토로라, 퀄컴, 삼성전자 등 11개 기업을 거치며 커리어를 쌓으셨어요. 각 회사를 거칠 때마다 김은주 님이 얻게 된 자산은 무엇인가요? 아니면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컸던 경우도 있었나요? 덧붙여 ‘효휼의 극대화’를 위해 목매지 않아도 되는(잘 이해되지는 않지만, 되게 부러운) 기업문화를 가진 구글에서 일하시면서 얻은 것이라면 무엇일까요?

◇ 가장 큰 자산은 ‘까짓것, 안 죽는다!’는 뱃심?(웃음) 여러 회사를 다녀보니 저 스스로 직장인(월급쟁이)보다는 직업인(디자이너)으로 남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더 확고하게 생기는 것 같아요. 회사는 나에게 월급을 주는 곳인데 직업적인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돈을 주진 않거든요. 내 능력을 유지하면서 회사와는 적당한 썸의 관계를 유지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효율의 극대화'가 기업의 성공 기준이 되면 창의적인 발상이 불가능해요. 효율을 극대화하려면 기존 방식을 유지하고 모든 공정을 규격화해야 하거든요. 새로운 시도는 언제나 비효율적이고 낯설고 저항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혁신을 위해선 창의력과 자발성이 필요한데 이건 사람의 정신세계(마인드)거든요. 강제로 만들 수 없는 거예요. 극도의 효율성은 직원을 순응하게 만들기 때문에 대량생산 시대나 특정 산업에는 적합하지만 혁신이 필요한 기업에는 좋은 게 아닌 거죠. 뭐든 해도 되는 것과 뭐든 하면 안 된다는 환경(혹은 시스템)이 사람의 두뇌에 큰 영향을 미치거든요. 구글이 가진 자율성, 오픈성, 다양성을 인정하는 문화는 내가 원하면 뭐든 해도 된다는 가능성을 만들어요.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다양한 시각을 배울 수 있고, 내가 시도한 일이 잘못되더라도 거기서 배운 걸 나누면 되니까 가능성이 무한대로 열리는 거죠. 저는 이런 ‘해도 된다'라는 마음이 제가 구글에서 일하면서 얻은 가장 큰 자산이 아닐까 싶어요.
 
"공감댓글 보며 독자들의 마음과 닿는 느낌에 오히려 힐링받아"

◆ ‘실패가 기준점’이라는 소제목이 붙은 글이 유독 기억에 남는데요, 다시 도전할 진짜 회복력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또 실패를 받아들이는 데는 어떤 자질이 필요한지 김은주 님의 생각을 듣고 싶어요.

◇ 주로 자잘한 실패여서가 아닐까요?(웃음) 앞에서도 말했듯이 저는 ‘도전’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아요. 뭔가 너무 거창한 느낌이라서요. 거창한 일은 시작하는 것도 부담스럽고 실패하는 것도 무섭고 실제 잘 안 됐을 때 상처도 크거든요. 애당초 도전이라고 생각한 일이 아니라서 실패라고 느끼지 않는 게 아닐까 싶어요. 특별히 도전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가볍게 시작해요. 구글 이직도 오랫동안 준비하거나 계획을 세운 게 아니라 늘 하던 대로 친구한테 보낸 연말 메시지가 시작이었거든요. 책도 처음부터 출간할 작정이었다면 엄두가 안 났을 거예요. 그냥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고(브런치 작가 신청했다가 떨어진 게 실패라면 실패?ㅎㅎ) 글이 쌓이다 보니 연말에 지인분들께 소식 전하다가 출판사와 연결이 되었고요. 가볍게 시작하면서 ‘아님 말고’라고 생각한 덕분에 진짜 ‘실패’라는 느낌이 안 들고 좌절도 크지 않았어요. 제가 결혼식장에서 신부 입장을 하면서 속으로 생각했다니까요. ‘아님 말고!’(웃음)

◆ 위의 저서를 통해 ‘나 자신이 행복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고민은 짧게 행동은 빠르게(고민만 하지 말고 일단 저질러라)’ 등의 메시지가 큰 공감을 얻고 있어요. 특히 청춘들의 반응도 굉장한데요, 김은주 님의 메시지 가운데 어떤 지점이 이런 긍정적인 피드백을 불러온다고 생각하나요? 그리고 독자들의 댓글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려요.

◇ 많은 분들이 제 글이 솔직하다고 얘기해주세요. 제 책을 읽고 위로를 받고 힘과 용기를 얻었다는 분들도 많고요. 25년 동안 11개의 회사 경험이 있고, 영어 한마디 못하지만 미국 와서 좌충우돌하면서 적응했고, 한국과 미국을 왔다갔다 하면서 직장생활을 했고, 지금도 겪고 있는 제 얘기라서 진정성이 있다고 느껴지나 봐요. 저는 그냥 일기 쓰듯이 제가 겪은 일, 감정, 다짐하는 생각을 쓰거든요. 전문작가가 아니다 보니 글이 좀 날것이고 투박하기도 한데, 그래서인지 옆집 언니나 친한 직장 선배가 하는 얘기 같다는 후기글이 많더라고요.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글쓰기 칭찬은 ‘글이 쉽고 부담 없이 잘 읽힌다’는 평이었어요. 잘 읽힌다는 건 마음이 열리고 공감이 된다는 거거든요. 제가 마음으로 쓴 글이 독자의 마음과 닿는 느낌이라서 오히려 제가 더 힐링이 돼요. 

◆ 마지막으로 개인적로든 일적으로든 앞으로의 계획을 듣고 싶어요. 그리고 대중 혹은 김은주 님을 아는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도 궁금해요. 

◇ 당분간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게 지낼 것 같아요. 회사 일 열심히 하고 글도 열심히 쓰고 저를 필요로 하는 곳에 강연도 하고요. 3년 후면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가 집을 떠날 텐데 그 이후엔 저도 좀 자유롭지 않을까 기대 중이에요.(웃음) 그땐 재택근무가 더 자리잡을 테니 여기저기 전 세계 도시를 다니면서 살아볼까 싶기도 해요. 이 넓은 세상에 못 가본 곳이 너무 많거든요. 누군가의 기억에 남는다는 건 고맙기도 하고 무섭기도 한 일이지 싶어요. 어느 특정 이미지가 시간에 박제되는 거니까요. 기억은 기억자의 것인데 그 안에 박제된 저는 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을 해야 제가 대중의 기대나 기억에 갇히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고요. 굳이 밝히자면 솜털처럼 가볍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고 싶다는 바람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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