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만난 사람] 홀트아동복지회 이수연 회장 “사랑으로 사람의 인생을 바꾸다”
[기자가 만난 사람] 홀트아동복지회 이수연 회장 “사랑으로 사람의 인생을 바꾸다”
  • 정진숙 편집국장
  • 승인 2022.03.14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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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필요한 곳에 실질적 도움 주는 맞춤형 지원 기관 되고자”
'사랑을 실천으로' 현수막 앞에 선 홀트아동복지회 이수연 회장. ⓒ 유선우 사진기자 

[휴먼에이드포스트] “입사 때만 해도 아동복지 하면 고아원이나 입양밖에 없었어요. 당시 홀트아동복지회(이하 홀트)가 했던 일은 그야말로 진취적이었죠. 아무 보조가 없는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부모 잃은 아이들을 거두고 새로운 가정을 찾아주는 작업들은 굉장히 고귀한 경험이었어요. 사랑으로 돌보고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보면서 사회복지가 무엇인지 깨닫았지요. 홀트에 몸담았던 기간은 피가 섞이지 않아도 얼마든지 서로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체득하는 과정이었어요.” 

37년간 복지 현장 최일선을 누비며
사회복지라는 단어조차 낯설던 시절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한 이수연 회장은 배움이 깊어질수록 사회복지가 실천적 학문이라는 점에 마음이 끌렸다. 1985년 홀트에 입사한 이 회장은 수도권의 홀트 산하 미혼모자 양육시설과 장애인복지관, 사회복지관 등에서 원장과 관장, 본부장 등을 거쳐 2021년 9월 21대 회장에 선임되기 전까지 37여년간 복지 현장 최일선에서 잔뼈가 굵었다.
“한때 기관에 대해 실망해 그만두고 싶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홀트를 더 나은 기관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안타까움과 오기 같은 것이 생겼어요. 그것이 이 자리까지 오게 한 원동력이었던 같아요”라고 홀트에서 롱런한 이유를 밝힌다.

2019년 작고한 고(故) 말리 홀트(해리 홀트의 셋째 딸) 전 이사장과 함께(2018). ⓒ 이수연 회장 제공

설립자 해리 홀트 씨가 1955년 8명의 전쟁고아를 입양하면서 시작된 홀트의 사업은 당시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던 장애인을 위해 특수학교와 보호작업장을 짓는 장애인 복지로 확대되었고 그런 홀트의 발자취는 복지의 불모지나 다름 없던 이땅에 아동 및 장애인 복지의 기틀을 잡는 훌륭한 밑거름이 되었다. 나아가 미혼모자와 보호종료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복지 사각지대에서 보호가 필요한 대상자를 찾고 그들에게 경제적·정서적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사업을 개발하고 추진해왔다. 무엇보다 홀트의 실천에는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사랑이 있었다는 점에 이 회장은 큰 자부심을 갖는다. 
남다른 사명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법하지만, 이 회장은 “사명감이라는 거창한 마음보다는 한 아이라도 품어주고 싶은 애끓는 마음, 어떻게든 아이들의 힘든 현실을 해결해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런 연민과 동정심이 아이들에게 가정을 찾아주는 일과 잘 맞았던 덕분이라고 덧붙인다. 

이 회장은 홀트의 실천에는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사랑이 있었다는 점에 큰 자부심을 갖는다. ⓒ 유선우 사진기자 

더 촘촘하고 더 민감하게 
이 회장이 홀트에서 겪은 가장 가슴 아픈 경험이라면 2020년 10월 ‘양천구 아동학대 사망 사건’(일명 ‘정인이 사건’)을 들지 않을 수 없다. “홀트에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사건이 일어났죠. 엄청난 비난에 시달렸고, 후원자들도 많이 떠났어요. 저는 조직 내부자로서 그런 일이 벌어지기까지 어떤 조짐이 있었다고 봐요. 그 조짐을 더 빨리, 더 민감하게 알아채지 못한 것이 아쉽고 안타까울 뿐이에요. 기관 스스로 더 촘촘하고 민감하게 관리감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문제를 예방하는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해요.”

사전에 문제를 알아차리는 입양 실무자의 민감성을 강조하는 이수연 회장. ⓒ 유선우 사진기자

비혼(독신)입양 등 입양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입양 관련 사건사고가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요즘, 입양 조건이나 사후 관리를 더 까다롭게 해야 한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이에 대해 이 회장은 명확히 선을 긋는다. “입양 조건이 지금보다 더 까다로워질 필요는 없어요. 현재 충분히 까다롭거든요. 2012년 입양특례법 개정안 시행으로 가정법원의 판결을 거쳐야 입양이 가능하도록 바뀌면서 법원의 입양 허가를 기다리는 데 길게는 1년이 걸리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입양 후 문제를 일으킨 부모들을 보면 못 배워서, 또 직업이 없어서가 아니거든요. 사후 관리도 마찬가지예요. 아무리 가정방문 조사횟수를 늘린다 해도 상담자의 아동인권 의식이나 문제를 알아차리는 민감성이 부족하면 또다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어요.”
이 사건으로 지난해 6월 선임 회장이 입양 실무기관장으로서의 책임을 지고 떠났다. 조직 개혁이 급선무라고 여긴 이 회장은 1995년 홀트 노조위원장을 지내며 경영진을 향해 질타의 목소리도 서슴지 않던 경력을 살려 홀트 회장 공개채용에 도전했다. “어떤 때는 ‘내가 뭐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나’ 싶다가도 잘못된 것을 눈으로 보고는 못 참는 기질이라 가만있을 수만은 없었어요.”
지난 9개월간 이 회장은 홀트를 제자리로 돌려놓느라 하루하루를 고군분투했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어깨가 많이 무거워요. 홀트가 건강성을 회복하는 게 무엇보다 시급하죠. 내부 소통관계를 조정하고, 새로 기획한 사업도 외부에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하고….”
기관 중심으로 생각하고 안팎으로 책임져야 하는 회장이 되고보니 어디를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누군가 개혁의 길은 거친 산세와 바람을 이겨내는 등정과 같다고 했잖아요. 정상에 다다를수록 산세가 험해져서 발을 잘못 디뎌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요. 처음 회장을 맡았을 때 제 심정이 딱 그랬어요.”

하남시종합사회복지관 관장 재직시 직원들과 함께 코로나 의료진 응원(2020). ⓒ 이수연 회장 제공

셋째 기르며 입양의 기적 경험
이 회장은 2007년 중증장애인 시설에서 7살까지 지낸 사내아이를 셋째로 맞아들여 딸 하나 아들 둘을 가진 엄마가 되었다. 시설에서 평생을 살아야 했던 아이에게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갖게 해주기 위한 결정이었지만, 이미 친자녀가 있는 상황이라 우려가 없진 않았다. “아이들끼리 갈등이 없을 수는 없지만, 입양한 자녀도 내가 낳은 자녀도 이런 경험을 통해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밀고 나갔죠. 그래도 완전한 가족을 이루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자녀들 누구도 편애하지 않고 공정하게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 회장은 셋째가 상처받지 않고 성장기를 보내도록 신경썼다. 부모들이 연장아를 입양할 때 특히 주의해야 할 점은 처음의 좋은 마음이 끝까지 가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 “보통 친자가 있는 사람이 연장아를 입양하면서 ‘사랑으로 기르면 되겠죠’라고 얘기해요. 근데 사랑만으로는 부족하거든요. 아이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거나 입양아가 질투하고 친자가 입양아 때문에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면 부모들이 입양을 견뎌내지 못해요. 결국 파양하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갈등은 당연한 과정이에요. 그 과정을 어떻게 슬기롭게 이겨낼지를 고민해야 해요.”
다행히도 이 회장의 자녀들은 그 과정을 무사히 지나갔고 잘 자라줬다. 처음엔 무기력해 보이고 도전정신도 부족하던 셋째는 10여년이 지나면서 자기 몫을 잘해내는 어엿한 청년으로 자라 대학생이 되었고 지금은 군복무 중이다. “저나 남편에게서 나올 수 없는 기질의 아이를 기르는 재미가 있어요. 다르니까 신기하고 예쁘고 더 기쁨을 주죠. 그것이 입양이 갖는 기적이에요.” 

홀트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면 누구라도 찾아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이 되고자 한다. ⓒ 유선우 사진기자

보호종료 아동에서 미혼한부모까지
만 18세가 된 보호종료 아동들이 홀로서기를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파랑새 꿈을 향한 날갯짓’(이하 ‘파랑새’)은 홀트가 선도적으로 시작한 사업 중 하나다. 2018년부터 현대백화점사회복지재단의 후원으로 이루어지는 이 사업은 이후 많은 복지기관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세상 밖으로 나와 온전히 혼자 살아가야 하는 보호종료 아이들에게는 경제적 도움도 물론 필요하지만, 인생을 살면서 의지할 존재를 만들어주는 정서적 도움이 무엇보다 절실해요. 홀트는 적립금을 지원하는 것 외에도 ‘파랑새’ 멘토링 사업을 통해 아이들이 사회에서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있어요.” 
이와 함께 그들이 경제적으로 홀로서기를 할 수 있도록 바리스타, 컴퓨터기술 등의 교육비를 지원하는 ‘런런챌린지’와 생활비가 없어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힘들게 병행하는 대학생들을 지원하는 ‘드림플러스’, 예술과 운동의 꿈을 가진 아동보호시설 예체능 고교생에게 멘토링을 지원하는 ‘네 꿈을 응원해’ 사업이 운영되고 있다. 작년 10월 봅슬레이 국가대표로 활동 중인 강한 선수가 ‘파랑새’ 명예 멘토로 위촉되어 화제가 됐다. 그 역시 시설에서 자란 보호종료 청년으로 “보호종료 아동에게 친구 같은 멘토가 되고 싶다”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해외 후원 사업장인 캄보디아 학교 방문(2019). ⓒ 이수연 회장 제공

홀트는 국내 아동복지에 그치지 않고 해외 빈곤 아동의 교육과 가정자립도 지원한다. 현재 캄보디아, 몽골, 탄자니아, 네팔의 빈곤지역에 홀트드림센터가 세워져 있다.
홀트의 아동복지 사업은 미혼한부모 지원사업으로도 이어졌다. 현재 홀트 산하에는 준비되지 않은 임신과 출산으로 힘들어하는 미혼한부모에게 주거를 제공하는 7개의 그룹홈이 운영 중이다. 나아가 미혼한부모가 그룹홈을 나간 후 개인의 적성과 재능을 살려 자립할 수 있도록 교육 및 훈련비를 주는 ‘똑똑한 엄마’ 프로그램과 배운 기술을 실습하고 상품으로 개발, 제작해볼 수 있는 공유공방 ‘가치만듦’도 마련돼 있다. 그들이 이곳에서 만든 수제청이며 가죽공예품 등 물품을 판매해 수익을 낼 수 있도록 플리마켓도 열어준다. 미혼한부모들은 이렇게 함께 배우고, 서로 소통하며 살아갈 힘을 얻는다. 

작년에는 회장 선임 소식을 듣고 수원 미혼모자 양육시설에서 함께 지냈던 식구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찾아왔다. 코로나 상황이라 사무실에 돗자리를 깔고 아이들과 함께 왁자지껄 놀았던 일은 내내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철없던 어린 엄마들이 그룹홈을 나와 혼자 애쓰며 아이들을 예닐곱 살까지 키워낸 것을 보니 대견했어요. 개중에는 미용기술을 배워 자영업을 하는 사람도 있고 저마다 살길을 찾아 꿋꿋하게 생활하고 있더라고요.” 무엇보다 이 회장을 울컥하게 했던 것은 그들이 선물과 함께 건네준 카드 한 장이었다. “‘원장님은 제2의 어머니예요. 저희가 아이를 키울 수 있게 돌봐주시고 도와주셔서 감사해요’라고 써있더라고요. 제 일을 한 것뿐인데 그렇게까지 과찬해주니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죠.” 

이 회장은 “홀트가 다른 후원기관처럼 홍보나 광고에 돈 쓰지 않고 후원에 진심인 곳이라고 평가해주는 분들도 있다”며 “그것이 홀트가 가진 저력”이라고 말한다. 앞으로 홀트는 후원 취지에 맞게 가장 필요한 곳에 실질적 도움을 주는 맞춤형 지원 기관이 되는 목표를 갖고 있다. 나아가 전문성과 신뢰성을 충분히 갖춰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면 누구라도 찾아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이 되고자 한다.

이 회장은 인터뷰를 끝내며 “비록 귀한 일을 꾸준히 해온 홀트의 면면이 이 자리에서 다 드러나진 않겠지만, 후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곳은 여전히 많다는 점을 꼭 알려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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