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닥터 김사부’와 이국종 교수, 그리고 고(故) 고원중 교수의 공통점은?
‘낭만닥터 김사부’와 이국종 교수, 그리고 고(故) 고원중 교수의 공통점은?
  • 정진숙 편집국장
  • 승인 2020.02.20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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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는 돈 낸 만큼이 아니라 아픈 만큼 치료받아야 한다”
〈낭만닥터 김사부 2〉 포스터. ⓒ SBS 홈페이지
〈낭만닥터 김사부 2〉의 포스터. ⓒ SBS 홈페이지

[휴먼에이드포스트] SBS 월화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2>가 23.4%라는 자체 최고 시청률(18일 방송분 집계)을 기록하며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에 열광하는 이유는 뭐니뭐니해도 거대병원 재단의 힘에 눌려 위기에 처한 돌담병원을 지키려는 외과의사 김사부(한석규)의 ‘정의로움’에 매료되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 종영한 같은 방송사의 드라마 <열혈사제>의 인기 비결도 권력의 카르텔에 맞서 ‘정의’를 외치는 다혈질 신부 김해일(김남길)이라는 캐릭터를 보는 재미가 쏠쏠했던 데 있다.
돌담병원은 비록 ‘돈이 안 되는’ 초라한 시골병원이지만 외상 전문센터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고 묵묵히 담당해왔다. 그러나 이런 돌담병원조차 자본(돈)과 병원 내 권력싸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돈의 논리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병원 역시 수익을 내야 하는 하나의 사업체이기 때문이다. 최신식 의료장비와 높은 수준의 의사들을 갖춘 대형 병원일수록 환자는 단순히 환자가 아니라 ‘고객’으로 여겨진다.


1885년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병원인 ‘광혜원’이라는 단어에는 ‘널리 은혜를 베푼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것이 ‘제중원(널리 베풀어서 사람을 구한다)’으로 명칭이 바뀌었고, 1904년에는 세브란스 병원이 설립되면서 가난한 환자들도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우리나라 병원사를 들여다보면 ‘환자라면 누구나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의료진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다시 말해 히포크라테스 선서 중 한 구절인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다’는 뜻이 반영되었던 것이다. 

정의로운 외과의사 김사부로 열연 중인 배우 한석규.  ⓒ SBS 홈페이지
정의로운 외과의사 김사부로 열연 중인 배우 한석규. ⓒ SBS 홈페이지

<낭만닥터 김사부 2>를 보는 내내, 지난 2월4일 아주대병원과의 갈등 끝에 경기 남부권역 외상센터장 자리에서 물러난 이국종 교수가 오버랩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국종 교수는 “병원으로부터 돈(예산)을 따오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게 너무 힘들었고 이젠 지쳤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2월17일 방송된 KBS 예능 프로그램 <옥탑방의 문제아들>을 본 시청자라면 ‘이국종 교수의 삶의 원칙은 무엇이었을까요?’라는 세 번째 문제의 정답 “환자는 돈 낸 만큼이 아니라 아픈 만큼 치료받아야 한다”라는 말에 ‘역시 이국종 교수야’라며 절로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이쯤에서 또 한 명의 정의로운 의사를 소개하려고 한다. 그는 지난 2019년 8월 세상을 떠난 삼성서울병원 호흡기내과 전문의 고(故) 고원중 교수다. 고 교수는 18년간 그 병원에 근무하며 결핵·비결핵 항상균 폐질환 환자 치료와 연구에 헌신해왔다. 지난 2014년에는 ‘제12회 화이자의학상을 수상했고 2018년에는 결핵 퇴치에 헌신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삼성서울병원에서 결핵과 비결핵 항산균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는 고 교수 한 명뿐이었다. ‘돈이 안 되는’ 이 분야의 연구가 병원으로부터 외면당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줄곧 이 분야에서 탁월한 연구 업적을 내왔기에 그에게 환자들이 몰리는 건 당연했다. 늘 환자의 편에서 실적 중심이 아닌 환자 중심의 진료를 해왔던 그는 병원을 상대로 “전담교수 1명을 더 뽑아 같이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수차례 인력 지원을 건의하며 번아웃 증후군(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정신적 피로감으로 무기력해지는 현상)을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그는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말았다.(<메디게이트뉴스> 1월15일자, ‘삼성서울병원 故고원중 교수의 안타까운 죽음’ 기사 참조) 그러나 그의 애석한 죽음은 몇몇 의료계 신문을 제외하고 주요 일간지에는 보도조차 되지 않았다. 그런 탓에 대한민국 의학계가 아까운 인재를 잃은 슬픈 사연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고 교수의 유족들은 “그가 (돈이 되는) 암을 진료하는 의사였다면 이런 일(극단적 선택을 한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지난 2019년 12월16일 삼성서울병원에서 뒤늦게 그의 추모식이 열렸지만, 병원 측의 자발적인 의사가 아니라 유족 측의 요구에 의한 것이었다. 병원 측이 고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도 있었다면 그렇게 등 떠밀려 추모식을 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의 부고를 전해 듣고 믿기지 않은 심정으로 장례식장을 찾았던 때가 떠오른다. 그와 나는 대학 시절, 대학연합 봉사 동아리에서 함께 활동했던 친한 동기 사이였다. 그를 아끼는 선후배를 비롯해 의료계 인사들의 조문행렬이 어찌나 긴지 한참을 기다린 다음에야 그의 영정사진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사진 속에서 너무나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의 부재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져 가슴이 더 먹먹했다.
늘 순수한 마음과 진지한 자세로 세상을 대하던 그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반년이 지났다. 그동안 외롭고 안타까운 그의 사연을 어떻게든 알리고 싶었지만, 그를 진정으로 떠나보내지 못해서였을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 <낭만닥터 김사부 2>를 보며 용기를 얻었다. 
자신의 부귀와 영화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살리는 일에만 전념하는 그 친구와 같은 의로운 의사들이 존재하는 한, 현재 전 세계를 두려움에 떨게 하는 ‘코로나19’와 같은 질병도 언젠가는 극복되리라는 믿음과 희망을 가져본다. 


이제야 그에게 부채를 갚은 듯 한결 홀가분한 심정이 되었다. 친구여, 부디 외로움도 고통도 없는 하늘나라에서 영면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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