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일화 작가의 예술산책] 마지막 3분, 그 순간의 마지막 인증샷
[홍일화 작가의 예술산책] 마지막 3분, 그 순간의 마지막 인증샷
  • 홍일화 편집위원
  • 승인 2020.06.29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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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일화 미술작가
ⓒ 홍일화 미술작가

[휴먼에이드포스트] 가끔 남의 불운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는 밉상들이 있다. 남의 집에 불나거나 사고 난 현장, 홍수 재난 지역 등등 하지만 미디어들은 그 규모가 다르다. 직접 현장에서 모델을 두고 촬영을 하거나 광고를 촬영하지는 않지만 그 이미지 그대로 재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에 파격이라는 타이틀로 다소 충격적인 이미지들을 선보이며 흡족해하곤 한다. 좀 더 센 거, 신선한 거 화끈한 것들만 추구하는 세상 속에서 앞으로 더욱더 어떤 충격으로 다가올지 점점 두렵기만 하다.

캐나다 뉴파운드랜드 메모리얼대학의 심리학자 캐롤 피터슨은 말한다. "10세 즈음에는 기억이 결정화된다. 그때부터의 기억은 유지되는 것이다. 반면 매우 어린 시절의 기억은 잊어버리게 된다."

전문가들은 경험이 아동의 두뇌에 각인되는 방식에 따라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 어떤 사건이 아동의 두뇌에 뿌리를 내리는 과정에는 부모가 큰 역할을 한다. 집단경험을 중시하는 아시아 부모와는 달리, 개성을 우선시하는 서양부모는 아이가 우스운 말을 하거나 특이한 일을 했던 순간에 대해서 아이에게 이야기를 하는 경향이 높기 때문이라고 연구진은 결론을 내렸다. 실제로,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의 특정 사건에 대해 기억하게 하려면 그 사건에 대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중요성을 인식하게 해주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3~5세 때 엄마와 함께 과거 사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회상하면서 의견을 표현하고 기억을 새로운 경험과 연관시킨 아동들은 그렇지 않은 아동에 비해 더 어린 시절을 기억할 뿐 아니라, 적응력과 자존감도 높은 경우가 많다고 에모리대학 심리학자이자 초기기억 전문가인 로빈 피부시는 말한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자기정체성을 쌓아가게 되는 것이다."

어려서 동네에 있던 고물상에 불이 크게 난 적이 있다. 동네사람들이 모여 불구경을 하고 나또한 불구경을 했던 기억이 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은 나를 집어 삼킬 것 같이 거대했고 그것은 너무나도 웅장해 보였다. 한동안 불에 관련된 꿈을 꾸게 되었다. 그 기억은 아직도 이미지로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모두 다 허물어 버렸고 삼켜버렸으며 지워버렸다.

ⓒ 홍일화 미술작가
ⓒ 홍일화 미술작가

영화에서 불을 사용하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다. 자동차가 살짝만 굴러도, 자동차의 충돌사고에도 그냥 폭발해 불타버리고 작은 불씨만 보여도 대형 화재로 만들어 버린다. 아직까지는 불만큼 좋은 영상미를 만들 수 있는 소재가 없기에 그렇게 사용한다고 한다. 영화적인 요소로 불은 자극적인 영상미와 살아있는 현장감을 주기 위한 요소라면 종교적인 의미는 좀 다르다.
 
불은 모든 것을 태워버린다. 불은 모든 죄를 흔적도 없이 태워버린다. 죄악을 태워버리고 사라지게 만든다. 불은 불순물을 태워서 깨끗하고 순결한 금속을 만든다. 우리의 영혼을 불에 연단된 순결한 금처럼 맑고 순결하게 하는 성화 과정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이 물을 더럽히고 공기를 오염 시켰으며 땅에 쓰레기를 채워 썩어가게 하고 있지만 유일하게 더럽히지 못하는 것이 불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원주민들이 가장 많이 하는 의식의 하나가 불의 의식이라고 전해진다. 유일하게 오염되지 않고 순수한 존재를 통해 인간의 순수성을 되찾고 정화를 하기 위함이다. 여기서 불의 의미는 순수와 정화의 의미로 사용된다. 또 다른 측면으로 불을 문명의 상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물과 함께 불을 일으키기 위한 연료의 확보는 모든 시대에 있어서 중요한 자원이 되고 있다고.

ⓒ 홍일화 미술작가
ⓒ 홍일화 미술작가

그리고 이 시대 인간이 새로 만든 정화의 방법이 폭발이라 생각한다. 자연이 만든 화산폭발로 어느 정도 전조로 예측이 가능하고 대비를 할 수 있지만 인간이 만든 폭발은 예측 불가능하게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고 폭파는 의도적 계획 하에 이루어진다. 폭발은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모르는 예측불가형이고 폭파는 계획적이다.

내가 다루고자 하는 불과 화재는 미디어에서 다루는 인위적인 불의 형상이다. 성형에서처럼 원하는 정확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폭파 상태나 불의 크기 정도는 원하는 대로 조율 가능하다. 익숙한 풍경작업에서 더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막혀 있다가 3년 후인 지금에 와서야 조금씩 다시 손보고 있는 작업들이 <마지막 3분> 이다. 길어야 3분 이내로 모든 것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 그 순간의 마지막 인증샷이다. 그것은 하나하나 내 기억 속을 더듬어 내 속에 있는 숨겨진 이미지들과 미디어 속에서 점점 더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이미지의 조합에 관한 합성으로 시작된다.

 

글_홍일화 미술 작가
여성의 미, 아름다움의 조건에 대해 회화적인 성찰을 보여준 작품을 그리고 있는 명성있는 재불작가로 현재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왕성한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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