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외국인 성인이 4년간 묻혔던 노고산 성지
세 외국인 성인이 4년간 묻혔던 노고산 성지
  • 김민진 기자
  • 승인 2023.08.06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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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업적을 남긴 엥베르, 모방, 샤스탕 사제를 기리며
서강대학교에 위치한 노고산성지 ⓒ 김민진기자
서강대학교에 위치한 노고산성지 ⓒ 김민진기자

[휴먼에이드포스트] 지난 8월 1일 서강대학교 가브리엘관 앞 노고산 성지를 방문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시작되고 세 명의 사제 앵베르 주교, 모방신부, 샤스탕 신부는 9월 21일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시신은 사흘 동안 버려져 있다가 교우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감시의 눈을 피해 유해를 거두는데 성공하여 노고산에 매장했다. 4년 후 교우 중 하나인 박 바오로가 가문의 선산인 관악산 줄기 삼성산에 유해를 이장하였고, 1901년부터 현재까지 명동성당 지하 묘소에 안장했다.

서강대학교는 세 신부의 숭고한 정신을 받들고자 2009년 6월 15일 가브리엘관 앞에 순교 현양비를 세웠다.

샤스탕 사제 현양비 모습 ⓒ 김민진기자
샤스탕 사제 현양비 모습 ⓒ 김민진기자

조선시대에 천주교 박해는 꾸준히 있었는데 대규모는 총 4번 있었다. 기해박해는 2차 천주교박해 사건으로 많은 천주교인이 학살당하며 순교한 사건을 말한다.

성 앵베르 라우렌시오 (한국 이름 범세형) 주교는 1837년 입국하여 성직자 양성에 힘을 쏟아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 세 소년을 유학을 보냈고, 라틴어와 신학을 가르치는 등 교회발전에 많은 노력을 했다.

성 피에르 필리베르 모방 (한국 이름 나백다록) 신부는 1836년에 입국하여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신학생으로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 세 소년을 뽑아 마카오의 신학교로 보내는 등 교세 확장을 위해 많은 일을 했다.

성 야고보 샤스탕 (한국 이름 장아각백) 신부는 1837년 조선에 들어와 모방 신부 뒤를 이어 비밀리에 선교활동을 했다.

기해박해가 일어난 후, 신자들이 고통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세 선교사들이 자수를 하여 1837년 9월 21일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했다.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의해 시성 됐다. (시성이란 가톨릭에서 성인의 명단에 올리고 전 세계 교회로 하여금 공경할 수 있도록 하는 선언을 말한다)

노고산 성지에 방문하려면 대중교통 지하철 2호선 신촌역 6번 출구에서 400m / 6호선 대흥역 1번 출구에서 600m, 서강대학교 정문을 통과하면 바로 왼쪽 가브리엘관 앞에 세 성인의 순교현양비가 있다.

* 현재 김민진 기자는 휴먼에이드포스트에서 생생한 '포토뉴스'를 취재하고 발굴하고 있는 발달장애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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