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사제들의 순교 역사를 지닌 왜고개 성지
천주교 사제들의 순교 역사를 지닌 왜고개 성지
  • 김민진 기자
  • 승인 2023.09.0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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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어때] 김대건 신부 등 순교 성인이 머물다 간 곳
왜고개 성지 입구 ⓒ 김민진 기자
왜고개 성지 입구 ⓒ 김민진 기자

[휴먼에이드포스트] 지난 8월 9일 용산에 위치한 왜고개 성지를 방문했다. 이곳은 순교자들의 시신이 묻히면서 천주교의 사적지가 됐다. 

현재 용산 군종교구청 국군 중앙 성당에 자리하고 있다. 군종교구는 교회사적 중요성과 순례자들의 기도를 돕기 위해 2013년 12월 순교자 현양비, 대형 십자가상, 십자가의 길, 기도처 등을 건립하고 성지를 확장했다.

왜고개는 원래 기와와 벽돌을 구워 공급하던 '와서'(조선 시대 왕실이나 관에서 쓰는 기와와 벽돌을 만들어 바치던 관아)가 있던 곳으로 그 이름이 전해져 왔다. 이곳에서 용산 예수 성심 신학교, 중림동 약현성당, 명동 주교좌성당 건물에 쓰인 붉은 벽돌도 만들었다.

왜고개 성지 ⓒ 김민진 기자
왜고개 성지 ⓒ 김민진 기자

왜고개 성지에 병오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한 한국인 최초 사제 김대건(세례명 안드레아) 신부의 시신을 매장하기도 했다. 또한 병인박해 때 새남터와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순교한 베르뇌 주교, 최형, 남종삼 성인 등을 수십 년간 매장했던 곳이다. 

병오박해는 1846년 6월 김대건 신부의 체포를 계기로 시작되어 9월 20일에 종결된 천주교 박해 사건이며, 병인박해는 1866년부터 1871년까지 지속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천주교 박해 사건이다.

박해란 못살게 굴거나 해롭게 한다는 뜻으로 조선 후기에 천주교가 널리 퍼지는 것을 염려한 조정이 많은 신자들을 처형하거나 유배의 벌을 준 것을 말한다.

특히, 베르뇌 주교(한국 이름 장경일)는 1856년 입국하여 10년 동안 조선 교회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베론 신학교를 설립했다. 한양(서울)에 2개의 인쇄하는 곳을 마련하는 등 천주교의 교세 확장에 커다란 공을 세운 주교다. 

최형(세례명 베드로)은 천주교 사제(모방•김대건 신부)를 보필하고 종교 서적을 번역하며 묵주를 만들었다. 베르뇌 주교의 임명을 받아 인쇄소 책임자를 맡고 사제와 신자들이 만나기 어려웠던 박해 시기에 서적을 출판하며 천주교를 전파했다.

남종삼(세례명 요한)은 베르뇌 주교를 통해 교회 일에 참여했고 선교사들에게 조선어를 가르쳤다. 또 프랑스 외방선교회를 통해 러시아 세력을 막고자 '연불방아론'(프랑스와 연합해 나라를 지키는 방책)을 흥선대원군에게 제한했다. 박해시대 때 외국인 선교사들을 숨겨준 일이 발각되며 순교 됐다.

1984년 5월 6일 이곳에 모셔졌던 10명의 순교자 중 8명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을 올렸다. 시성이란 가톨릭에서 성인의 명단에 올리고 전 세계 교회로 하여금 공경할 수 있도록 하는 선언을 말한다.
왜고개 성지는 순교 성인들이 머물다 간 역사적인 곳으로 그들의 삶과 정신을 느끼는 천주교 성지로 뜻이 깊다.

성지는 지하철 4호선 신용산역 1번 출구에서 308m, 군종교구청 국군 중앙 성당에 있다. 매일 오전 8시에서 오후 4시 30분까지 방문 가능하며, 차량 주차는 불가하다.

* 현재 김민진 기자는 휴먼에이드포스트에서 생생한 '포토뉴스'를 취재하고 발굴하고 있는 발달장애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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